24시간이 모자라

선풍기의 운명

by 라라


선풍기가 귀하던 시절.

한 대만으로 온 식구들이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곤 했다.

요즘은 선풍기도 각자 1개씩 쓰고 있고 각방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집도 많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요즘 선풍기와 에어컨 없이 살 수가 없다.

선풍기만 가지고 살으리하면 난 온 세상이 지옥이구나 라며 좌절할 것이다.


결혼하고 선풍기를 청소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날개에 묻은 먼지는 그냥 자연스레 떨어지는 줄 알았으니 말이다.

어느 날은 선풍기를 틀었는데 먼지가 날아와서 '이게 뭐지' 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선풍기 뒤쪽에서 먼지뭉치들이 정신없이 활개를 치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착한 남편은 선풍기를 분리해서 청소를 해주었다.

나는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와~~~ 신기하다' 했더니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던 남편은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자상했었던 남편..


지금은 선풍기가 4대.

네식구인 우리는 각자 1개씩 사용하고 있다.

서로 좋은 것 쓰겠다고 다투던 동생은오빠를 이겨버리고, 좋은 걸 가져가 버린다.

그래도 양보해 주는 오빠. 이래서 웃으며 사나 보다.


선풍기를 켜고 자면 죽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진짜인가? 겁이 나서 꼭 시간을 맞춰놓고 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공기순환만 되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즘은 선풍기를 무제한으로 틀어놓고 잔다.


갑자기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외할머니도 더위가 많으셨다. 선풍기 회전을 시키는 걸 극도로 싫어하셨다. 나중엔 할머니만 사용하는 전용선풍기가 생길 정도였다.



우리 식구들이 집에 있는 날은 선풍기가 24시간 풀가동 된다.

24시간 동안 팬을 돌려 되는 선풍기도 힘이 들 거란 생각이 든다.

조금씩 열을 식혀가면서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고장 나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수명을 다해 버려지는 선풍기는 고쳐볼 생각도 안 하고 가차 없이 분리수거통에 들어가 버린다.

이게 24시간 돌아가는 선풍기의 운명이다.


어쩜 우리도 24시간이 모자라게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 조급해하며 1단으로 해도 되는 걸 2단 3단까지 속도를 올려가며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운명도 선풍기와 같은 운명이 아닌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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