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에 걸린 시계

by 라라


매일 같은 자리에, 같은 무게로 내 손목을 감싸는 시계는 단순한 기계 이상이었다.

나에게는 쓸 만한 손목시계가 두 가지 정도 있다.

하나는 은색 시계인데, 살 때부터 줄이 너무 길어 내 손목에 맞게 줄여 두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그 시계를 쳐보라 하니, 너무 꽉 끼어서 도저히 찰 수가 없었다.

살이 얼마나 찌면 시계가 작아질 수가 있는 건지, 스스로도 충격이었다.

다른 하나는 가죽줄로 된 시계였다.

하지만 가죽이 너무 낡아서 이제는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결국 시계방을 찾아가 쇠줄로 교체하기로 했다.

시계방에서는 내 작은 시계에 맞춰 예쁘게 줄을 바꿔 주셨다.

다행히 조금 낙낙하게 맞춰 주셔서 이번에는 손목을 조이지 않았다.



은빛 바늘이 분주히 돌고 멈추기를 반복할 때마다, 내 하루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겐 시간을 재는 단순한 도구일 뿐이겠지만, 내게 시계는 지나간 순간들의 기록이자,

아직 오지 않은 약속의 증거다.

가끔은 시곗바늘이 내 숨결을 따라 함께 뛰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작은 원 안에서 돌고 도는 바늘이 나에게 묻는 듯하다.

지금, 어디쯤 서 있느냐고.


요즘은 스마트워치를 차는 사람이 많아서, 내 시계가 가끔 ‘고인 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스마트워치가 너무 크고, 충전도 해야 하고, 여러모로 불편하다.

그래서 여전히 초침이 있는 아날로그시계가 좋다.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타임머신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만약 시간이 되돌아간다면, 나는 스무 살 시절로 가보고 싶다.

그때 좀 더 치열하게 배우고 도전하며 살아보고 싶다.

지금 돌아보면, 20대를 연애와 술로만 보내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진짜 타임머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처럼 땀이 많이 나는 계절엔 시계 안쪽이 끈적거리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시계를 좀처럼 빼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조심스레 시계를 푼다.

그 순간, 오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갔음을 실감하듯이.


시계도 인생도 끝없이 돌고 도는 듯하지만, 같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는 손목에 시계를 차고 오늘을 기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지금, 어디쯤 서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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