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어릴 때 엄마는 내가 어린이집 가기 전 드레스를 입는 걸 좋아하셨다.
매일 아침, 작고 예쁜 드레스에 머리를 묶어주시던 그 모습이 나에게는 그냥 ‘당연한 일상’이었다.
한 번은 엄마가 내 머리에 파마를 해주셨다.
집에 돌아왔더니 아빠가 크게 호통치셨지만, 그 순간 나는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자꾸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의 잔소리에 울 뻔했지만, 결국 다음 날 나는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풀었다.
엄마는 조용히 나를 데리고 가셨고, 나는 엉엉 울면서도 엄마의 손길이 고맙게 느껴졌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두통이 심하셨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드셨을 텐데도 엄마는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셔도 꼭 도시락을 싸주셨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도시락을 친구들 앞에 들고 가는 것이 늘 조금 부끄러웠다. 엄마는 프라이팬에 굽지도 않은 소시지 위에 케첩만 잔뜩 뿌려서 도시락을 싸주셨다.
다른 친구들은 계란을 묻혀서 맛있는 소시지를 싸 오는데 비교가 되어 점심시간이 괴롭웠다. 엄마에게 여러 번 말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걸 굽지 못할 정도로 힘이 드셨었나 보다고 이제는 이해가 간다.
엄마가 아파서 그렇다는 건 이해했지만, 나도 어렸던 만큼 속상했다.
그 도시락은 국가고시 준비 중에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따뜻한 끼니는 늘 하루를 버티게 해 준 힘이었다.
늦은 밤 공부할 때도 엄마는 잔소리 없이 소소한 간식들을 남겨두셨고, 나는 그 배려에 눈물 날 듯 감사했다. 결국 시험에 합격하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엄마, 나 붙었어.” 엄마는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 순간, 무수히 반복된 아침과 도시락, 그리고 잔잔한 응원이 모여 내 안에 견고한 힘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면허증을 따고도 지방 병원 면접에서 계속 탈락하며 좌절감이 깊어갔다.
절망감 속에서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 “엄마도 모르잖아요!”라며 화를 냈다.
엄마는 조용히 “네가 속상하니 내가 더 조심스레 말했어야 했네”라며 내 감정을 어루만져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엄마도 완벽한 위로자는 아니며, 지친 당신의 노력 뒤에서 나는 닮아가야 할 용기도 함께 배운다는 것을.
결국 나는 서울로 올라가 소형 병원에 취직했다. 낯선 도시, 고시원 생활은 힘들었지만, 그곳에서도 엄마의
도시락이 떠올랐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당연했던 그 순간들 모두가 엄마였다.’ 그 사랑은 나의 일상이 아니라, 나의 삶을 지탱한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느린 걸음이지만 나아가고 있다.
엄마가 허락해 주신 삶 위에 서 있는 나는, 오늘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엄마 덕분이라는 진심을 전하고 싶다. 아직 많이 부족한 딸이지만, 이제는 엄마께 받은 온기를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당신이 있어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