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요

섬집아기와 아빠와 크레파스

by 라라



엄마, 그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요

나는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 여동생, 엄마, 그리고 나. 셋이 함께 노래방에 간 날이다.
서로 처음이라 그런지 누구 하나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오갔다.

기억나는 건 그 어색함뿐이다. 엄마의 노랫소리는 내 기억 속에 거의 없다.


엄마는 늘 바빴다.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돌아오고, 돌아와서도 쉴 틈 없이 집안일을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노래를 한 번도 듣지 못한 게 아니라, 그저 엄마가 노래할 틈조차 없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나는 어린 시절, 혼자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친구들과 놀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자주 노래를 불렀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동요를 따라 하거나, 혼자 작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그 안에서 위로를 찾곤 했다.

그중에서도 섬집아기와 아빠와 크레파스는 유독 내 마음을 울리는 노래였다.
섬집아기는 엄마가 아기를 혼자 두고 굴 따러 간다는 내용인데,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아기가 잠든다는

가사에 어린 나는 이유 모를 슬픔을 느꼈다.

엄마 없는 아기의 모습이 마치 나 같기도 했고, 그래서 이 노래를 들을 땐 항상 눈물이 났다.

그때 나는 노래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어쩌면 혼잣말 같은 위로였던 것 같다.
말하지 못했던 외로움, 보고 싶다는 말, 나도 안고 싶었다는 마음을 노래에 담아 흘려보내는 일.
어린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와 크레파스.
이 노래는 지금도 내 눈물 버튼이다.

노래 속 다정하고 따뜻한 아빠는, 내게는 없던 사람이었다.
우리 아빠는 집에 거의 없었고, 있어도 무서웠다.
말보다 한숨이 많았고, 따뜻한 손길보다 무거운 기운이 먼저 느껴졌다.

그래서 어릴 적 이 노래를 들으며 처음으로 마음껏 울었던 기억이 있다.
다정한 아빠를 상상하며, 크레파스 병정들이 나뭇잎을 타고 놀고, 아기 코끼리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떠올리면서—그 상상이 너무 예뻐서, 또 그리워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아기였지만, 이미 아빠를 원망하고 있었다.
왜 우리 집엔 그런 따뜻함이 없을까, 왜 우리 아빠는 저 노래 속 아빠 같지 않을까.
다른 친구들의 다정한 아빠가 부러웠고, 그래서 우리 아빠가 더 미웠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두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고인다.
엄마의 부재, 아빠의 거리감, 그리고 혼자서 부르던 그 노래들 속에 어린 내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노래를 통해 가족을 상상하고, 또 그 안에서 조용히 위로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그 노래들이 들리면 마음이 조용해지면서도 아려온다.
그 시절의 내가 내 안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게 된다.
엄마도, 사실은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까.
그저 바빠서, 혹은 힘들어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노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아빠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에 나를 생각한 적은 있었을까.

사는 게 늘 정신없고, 마음은 말보다 늘 한참 느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떤 감정은 말보다 노래로 먼저 떠오른다.
그 노래들은 이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음악 같기도 하고,
한참 말 못 하고 꾹 참고 있던 내 마음을 대신해준 조용한 목소리 같기도 하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