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밑줄 그은 이유

by 라라


책을 깨끗이 읽고 싶었다.

좋은 내용이나 기억하고 싶은 내용에 포스트잇만 붙여 놓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내용들을 다 잊곤 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처음 밑줄을 그을 때, 연필로 먼저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그러곤 필사를 했다.

왜 인지 모르게 그 순간이 내 마음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그 밑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끄럽던 밑줄도 결국 내 성장의 기록이 되었다.


어떤 날은 밑줄이 너무 많아, 어지러울 정도였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던 시절, 나는 모든 문장에 집착하면서 밑줄을 그어 됐다.

그때의 밑줄들은 너무 욕심이 많고, 방향을 잃은 나의 마음이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처음에 밑줄을 그었던 책들을 찾아보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예전의 나의 모습들이 기억이 나서 설레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서 같은 책을 다시 펼쳤을 때, 예전엔 지나쳤던 문장에 새 밑줄이 새겨져 있었다.

그건 내가 달라졌다는 증거이다. 밑줄을 그어야 할 때 긋는 그 마음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밑줄은 '강조'가 아니라 '감사'의 표시가 되었다.

그동안의 밑줄들이 모여 내 이야기들이 되었다.

내 인생의 책 위에 오늘도 조용히 한 줄을 그어본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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