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
엄마는 시골 마을 끝집에서 자랐다.
산 아래 작은 논밭이 있고, 닭이 돌아다니는 마당이 있는 집.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여름이면 메뚜기가 뛰어다녔다..
그곳이 엄마의 세상이었다.
엄마는 막내딸이었다. 오빠 둘 밑에 언니가 넷.
엄마는 늘 바빴고, 아버지는 무뚝뚝했다.
그래서 엄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런 엄마는 체육시간이 돌아오는 게 고역이었다.
달리기도 할 수가 없었고,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도 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운동장 계단에 앉아서 재미있게
뛰노는 친구들만 바라 볼뿐이었다.
한 번은 너무 뛰고 싶어서 절뚝거리며 되지도 않는 다리를 가지고, 운동장 한 바퀴를 열심히 뛰었다.
정말 뛰고 싶었다. 미치도록 남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뛰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것도 너무너무 지겨웠다.
그래서 미친 듯이 뛰었지만, 그래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 바퀴만 돌고 그대로 계단에 주저앉아버렸다.
하지만 슬프지만 너무 기쁜 마음에 혼자서 엉엉 울고 말았다.
엄마는 왜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났던 것일까?
절뚝거리며 뛰는 나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가 싫어서,
몰래 운동장을 뛰고 있는 자신이 처량하기도 했지만 해냈다는 기쁨에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할머니는 땀과 눈물에 젖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냐며 물어봤지만, 엄마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물으셨다.
왜 그때 날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냐고......
하지만 엄마는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에서 혼자 조용히 숨죽이며 눈물을 삼켰다.
엄마는 조용한 성격으로 부모 속을 썩인 적이 한 번도 없는 착한 딸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4살 무렵 사고가 발생했다. 그날은 엄마와 둘째 이모랑 둘이서만 집에 있었다.
엄마를 엎고 있던 이모는 엄마가 계속 칭얼거리며 울고 발버둥을 치자 그만 엄마를 바닥에 떨어트려 계단을
굴렀다고 한다.
무서웠던 둘째 이모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하고.
하지만 얼마 후 엄마의 다리에 상처를 발견한 할머니와 다른 이모들의 추궁에 둘째 이모는 사실대로 말을
하였다고 한다.
둘째 이모를 꾸지르긴 했지만, 형편이 좋지 않던 엄마 집에선 가벼운 타박상이라고만 여기고 병원에 데려가질 않았던 것 같다. 아무 일도 아닐 거라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커 카면서 이상하게 다리를 절뚝거리는 엄마를 보고 그제야 병원에 데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양쪽 다리의 길이도 다르고, 발사이즈도 양쪽이 달라지고 말았다.
운동회가 다가온 어느 날 엄마는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어차피 우두커니 앉아만 있을 거 집에 있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속도 모르고 이모들은 신이 나서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로 가버렸다.
집에 있는 동안 엄마는 할머니와 동네친구분들이 놀러 와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엿듣고서야 다리를 어떻게 다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눈물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고 방에 들어가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아픈 다리라고 했는데... 너무 화가 났다.
엄마는 원래 이렇게 태어난 줄로만 알고 있었다.
누가 비밀로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식구들은 암묵적으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