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해지는 마음
세월이 빠르다는 얘기가 식상하지만 글을 쓰면서 달력을 보게 된다. 7월이란 글자가 온전히 보이는데 올해의 반이 지나버렸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1월은 뭐 했을까? 4월에는 뭐 했을까? 생각해 보니 잘잘한 고민들로 뒤섞여 보냈다. 그 당시에는 크기가 컸겠지만 시간과 세월의 힘이 작게 만들어 버린다. 이래서 살아내고 살아간다.
3~4년 전 주변에서는 흰머리를 기르는 분들이 많았다. 나 역시 이 시기에 용기를 냈고 유행 시기였다. 모두 염색의 불편함에 지쳐있었고 어쩔 수없이 해야 하는 염색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거다. 매스컴에 비친 유명인들이 흰머리를 하고 나왔고 젊은이들은 그레이 염색을 했다. 흰머리로 살아보려면 최소한 1년은 인내의 끝을 봐야 한다. 한 달에 1센티가 자라니까 1년이면 10센티정도 자란다. 한 번쯤 해보았던 이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로 돌아간다. 손주 백일 떡과 돌떡을 맛있게 만들어 주었던 60세 될 듯 말듯한 떡집 아주머니와 마트 앞 난전에서 야채를 팔던 70대를 넘기신 아주머니도 모자도 써보고 했으나 너무 늙어 보여서 안 되겠다고 염색을 다시 하셨다.
쉽지 않다. 타인의 시선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영 아니올시다'이다. 염색을 하면 까맣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이 짧은 순간이지만 젊어 보인다. 길들여진 습관 때문에 흰머리가 올라오면 희수구레 한 모습이 봐주기 힘들다.."허연 머리를 왜 합니까" 하는 말에 속상하지만 그런 모습이다. 젊었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그래도 늙음을 피부에 묻히고 살지는 않는다. 거울 속에 비친 흰 머리카락은 꼭 집어서 "늙었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새치가 아니고 늙은 거다.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올라올 일은 없을 테고 더 이상 백발이 되지 않고 남아있는 검은 머리와 섞여서 그레이 빛으로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똑 단발을 하니 관리 안 하신 80대 노인하고 똑같아서 옆머리를 살짝 길게 빼서 하고 다닌다.
흰머리 길러보기 동참자들이 서서히 물러났다. 60대는 없는 것 같고 진짜 어르신 소리를 들을 만한 나이에 간혹 보인다. 아직 일을 하고 있으니까 타인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들 앞에 노인으로 보이는 것이 여전히 편치 않다. 염색을 하는 남편에게 조금 더 미루고 뒤로 물러나게 된다. 이것이 신경 쓰인다. 그래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다시 염색을 하실 거다.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까 애쓰고 염색을 한다.
3년 하고 8개월째 흰머리로 살아간다. 늙었다는 생각은 당연히 염색할 때보다는 많이 하게 된다. 거울 보는 숫자만큼 한다. 어울리는 옷 색깔도 한정적이다. 원색의 옷은 어울리지 않고 뭐든 좀 이상하다. 길을 가다가 한번 보고 다시 보는 눈길도 부담스럽다. 검은색 염색모로 잠깐씩 느꼈던 회춘한 기분마저 누릴 수 없다.
염색은 누기 뭐래도 귀찮다. 그 염색의 귀차니즘에서는 해방되었고 염색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머리카락 빠짐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마음도 사라졌다. 깔끔한 검은머리하며 머리카락 빠질래? 흰머리하며 노인할래? 나에게 묻는다. 흰머리 하겠다.
2023년 07월 06일 목요일 덥다. 30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