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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Jul 06. 2023

목욕탕 4

생로병사를 만나다.

2000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이곳 대중목욕탕은 손님이 10명을 넘기면 꽉 찬듯하다. 목욕탕 입구 계단의 화분들도 여전하다.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生과死를 보게 된다. 처음 만날 때 30대쯤 되는 젊은 부부 주인장과 시어머니와  친척 언니 등이 직원이었다. 일반적인 목욕탕은 이른 아침 문을 열고 초저녁쯤 문을 닫는다. 이곳은 저녁 12까지 영업을 하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늦은 시간에도 올 수 있다.


 여기도 사람이 만나는 곳이니 시시비비가 한정 없다. 한때는 버릇없는 새댁이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되어 다른 목욕탕을 잠시 다닌 적이 있는데 결국 그 새댁은 주인과 크게 싸우고 나갔다. 젊은 주인장이 찾아와 "다시 오시라" 말을 전했다. 언니가 운영하는 꽃집에서 일하는 새댁이었는데( 새댁은 나보다 젊은 사람을 지칭한다)  생긴 것은 하얗게 생겨가지고 목욕탕 사우나에서 주름잡기 하고 다닌다. 속이 검다. 쉽게 사귀지도 쉽게 바꾸지 않는 나로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한 불편한 이웃이었다. 강변을 걷다가 만나기도 하는데 한 번은 눈을 피하고 한 번은 눈을 끝까지 쳐다보며 기싸움까지 하는 걸 보면 못된 성격에 소유자 임이 분명하다. 힘든 코로나 시기를 보내고  이웃들은 다시 목욕탕에서 만난다. 오래된 이웃도 있지만 새로 만나는 이웃도 있다. 한 곳에서 23년을 살았다면 대부분 알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세월이 흐르니 건물도 늙는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천정에서 빗물이 벽을 타고 스며 나오고  며칠 전에는 정수기에 물기 묻은 손으로 스테인리스 컵에 따르다가 전기가 올라서 기겁을 했다. 수건으로 컵을 잡고 냉수를 받아먹었다. '감전 주의' 문구를 정수기 앞에 붙여놓고 다른 냉수 통을 준비해 놓았다. 스테인리스 컵을 쓰지 않고  도자기 컵을 쓰니 괜찮다.  


한 달에 9만 원을 내고 시간은 자정까지 목욕을 할 수 있다. 씻던 사람들은 냉탕과 온탕을 한 번씩이라도 왔다 갔다 하면 피곤이 풀린다. 받아놓은 온탕 물이 탁해지고 미지근해져도 뜨거운 물을 틀지 않는다. 저녁 12시 '땡' 하면 청소를 하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더운물을 틀면 주인장 할머니 눈치를 보게 되니  늦은 시간에 오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한다. 한 번씩 모르는 이들이 와서 더운물을 '확' 틀어 뜨끈하게 씻을 때도 있다.


 내 나이 40대에 만났던 이들과 23년 사계절을 보낸다. 목욕탕 바닥에서  미끄러질까 봐 양말을 신고 들어왔던 3살 주인장 아들은 쑥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30대 후반부터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정은이 엄마가 며느리를 보았고 살을 열심히 빼서 그런지  탈모가 와서 가발을 쓰더니 요즈음은 건강에 문제가 생겼는지 다시 살이 많이 쪘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힘들어하지만 깊숙한 사정은 묻지 않는다.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퉁명스럽지는 않게 주변 이웃들과  지내는 것이 나름 철칙이다. 한 곳에서 같은 이웃을 거의 매일 벗은 몸으로  보게 되는데 상상이상의 소문도 날 수 있고 작은 말실수도 싸움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없이 다니니까 우울증 환자라는 소리도 들었다. 사람 속을 뒤집에 놓는다.


변덕을 떨며 "하하 호호" 하던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똑같은 머리핀을 착각했는지  본인 것이라 의심을 하니 싸움이 안 날 수가 없다. 옆에 있는 사람까지 끌어들여 동조를 하고 편이 갈려서  한 달을 소란 피우며 어수선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새댁은 목소리가 크고 콧노래도 잘 불렀다. 반말을 잘해서 거리를 두었는데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나타났다. 췌장암과 싸우다가 거죽만 남았을 때 좋은 곳으로 갔다. 힘을 내라는 소리도 못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항암치료 하러 갈 때 목욕 탕에서 씻고 가더라. 고층 빌딩에서 유리를 닦는 일을 하던  예쁘장한 40대 새댁은  등을 한 두 번 밀어준 적이 있는데  1년 정도 목욕을 다녔다.  익숙해질 무렵 높은 곳 유리창을 닦다가 발을 헛디뎌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넜다. 한참을 생각이 나서 샤워기를 틀고 천장을 쳐다보며 멍해 진적이 있다. 


목욕탕 바닥에 미끄러져 골반뼈와 팔목이 나갔다며 요란한 이들도 있다. 발바닥 물이 장판을 만나니 그대로 쭉 미끄러져서 발목이 탁자 끝에 부딪쳐 피가 철철 났던 떡볶이 집 아주머니. 손수건으로 묶어주며 약국에서 큰  메디폼을 사서 붙이고 내일 병원 가라 했더니 음료수를 건네며 고맙다고 한다. 이분 만난 지도 7~8년 된듯하다.


저녁시간 때의 최 장수 고객이 됐다. 주인장 새댁은 주로 낮 시간에 일을 하고 있지만 가끔은 만났다. 23년 치고는 변하지 않는 모습이 늘 비슷했다.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 6월에 들려왔다. 새댁이 대장암이라고. 한 달 전쯤 목욕을 하고 나오는데 술에 취해서 친구와 비틀거리며 목욕탕 앞을  지나는 것을 보았다. 뒷모습을 쳐다보며 힘든 일이 있나 보다 했더니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젊어서 그런지 가는 길도 급하게 뛰어가더라. 목욕탕은 숨죽이듯이 조용했고 가라앉은 기운으로 누구도 큰소리 내는 이 없이 2주를 보냈다. 문은 계속 열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마주치는 이웃은 옷을 입던 안 입었던 반갑다.  뱃살 타령하며 쪼끄만 냉탕에서 신나게 물장구치는 60대 돈가스집 아주머니에게 독탕하라고 내어준다. 70대 성당 다니시는 흰머리 할머니는 묻지도 않았는데  전신 아픈 곳을 나열한다. 유튜브에 찬송가를 켜 놓고 따라 부르는 50대 찜닭집 아주머니도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 빼고는 넘어가면 그만이다. 덜 섞어 부딪힘을 줄이고 못 본 듯 안 본 듯이 나에게 집중하면 된다.  살아있음에 족하니까.



2023년 07월 06일 덥고 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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