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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Jan 04. 2020

삶 10

마음 전하기


 전방에 계신 국군 아저씨께
이 추운 겨울날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우리는 아저씨들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초등학교 때 국군 장병 아저씨께 편지를 썼다. 옆 친구들이 쓰는 것을 기웃거리며 썼던 공통된 첫 소절이다. 50년이 지났건만 어쩜 이리도 생생하게 생각이 나는지 입에서 줄줄 나온다. 생면부지의 20살 아저씨한테 초등학생이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편지 받은 소감을 20살 때 군인이었던 남편에게 물었다."뭐 그냥 좋았지" 남편은 웃는다. 누군가가 내무반에 들어와서 편지봉투 하나씩 나누어 주고, 비숫한 내용이지만 큰소리로 읽는 친구도 있었고 특히 여고생 편지를 받은 친구는 더 좋아하며 읽었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줄곧 썼다. 첫 소절은 똑같다.'전방에 계신 국군 아저씨로 시작해서~ 잘 살고 있어요.'였다.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시작이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는 꼭 시 한 편을 적어서 낭독을 하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글귀로 시뻘게진 얼굴과 버벅거리며 낭송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키득키득 웃었고, 혼이 빠져 읽다가 박수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의자에 앉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어쭙잖은 시인의 시작이었다. 잘 쓰지도 않는 일기장은 해마다 문방구에게 하루 종일 골랐다. 노란색 열쇠 달린 일기장을 사들고 들어와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비밀이란다"하면서 첫 장을 시작했다. 다음 장으로 넘기려 애를 썼지만 몇 장 못 쓰고 결국 버리기를 부지기수였다. 똑같은 일상에서 비밀이 있어야 쓸 것인데 쓸 말이 없었다. 일기장은 은밀하고 아슬아슬한 이야기가 있어야 했고, 밤에 몰래 쓰는 것으로 생각한 거다. 결코 아슬아슬한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골방 쓰기는 몇 장으로 끝났다.


 남편은 연애편지를 잘 썼다. 멋을 잔뜩 부린 단어들로 버터처럼 느끼 느끼했다. 밤새도록 읽으며 남편이 글을 쓸 때 모습도 상상하며 좋아했다. 다시 쓰라고 해도 그때의 감정으로 못 쓸 것이고, 다시 읽어 보라 해도 못 읽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분명히 애틋한 감정으로 썼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시절 추억으로 오늘까지 질기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는 작가인 듯 시인인 듯 은근슬쩍 글을 써왔다. 


 남편과의 애틋한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동지처럼 살아간다. 동지들은 쓸데없이 사소한 것들 가지고 늘 싸운다. 목소리 커지고 약간 들린 코가 슬슬 더 들려 올라가면서 남편은 열을 낸다. 차마 진정 못 봐줘서 방문을 닫고 나오면, 못다 푼 감정 앓이를 시작한다. 하루가 지나 남편은 몇 자 쓴 문자를 보낸다. 불같은 분노의 불길은 몇 자 안됐지만 시원한 찬물 한 바가지처럼 천천히 불길을 잡는다. 글은 마력이 있다.                              


 연말과 연시에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편지처럼 마음을 전하고 있다. 모두 감동의 답을 써준다. 말로서 나눈 인사보다 따뜻하다. 고운 말을 쓰게 되고 정수기 물처럼 잔여물이 걸러져 깔끔하다. 하고 싶은 얘기를 이성적으로 쓸 수도 있고 지금 여기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국군 아저씨를 통해서 편지 쓰기를 연습했고, 부끄러운 시 한 편 낭독으로 시를 쓸 수도 있게 됐다. 오늘 한 장을 편지를 쓰고 또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 괜스레 울컥해지며 마음이 싸하다. 해가 지려고 한다.




2020년 1월 04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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