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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Jan 03. 2020

흰머리로 살아가기 1

파뿌리로 살아보기


 새해 첫날 떡국을 끓인다. 마늘과 더불어 도마 위에 누워있는 파뿌리가 이리도 마음을 싱숭생숭 만들 줄이야!. 내 머리카락이 파뿌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40대부터 시작한 흰머리 염색은 20년을 넘게 했다. 친정아버지는 내 결혼식장에서 검은색 머리카락은 한가락도 없이 흰머리 카락을 휘날려 주셨다. 모든 하객들은 아버지가 주례 선생님인 줄 알았다고 한 마디씩 해주었다. 멋있다는 얘기였고, 백발이 한몫을 한 것이다. 그 멋있던 흰머리 주인공이 내가 되었는데 하나도 멋있지도 기쁘지도 않다. "아버지 멋있어 "하면 소리 없이 아버지는 웃으셨다. 나는 젊은 딸이었고,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셨다. 그때의 아버지 마음이 지금 내 마음 같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의 유전자 덕분에 여태껏 머릿발은 굵고 숱은 한가득이었지만 , 사십이 지나면서 염색을 해야 했고 염색을 하고 일주일만 지나면 반짝반짝 흰머리가 비집고 올라왔다. 올라오는 족족 한치의 용서도 없이 깡그리 없애주느라 얼마나 염색을 해댔는지 모른다. 줄곧 했던 염색을 머리 밑은 잘도 버티어 주더니만 이제는 못 견디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럭저럭 미모를 위해서 가렵고 붉어지는 것은 참겠는데  머리털이 눈에 띄게 줄어드니 슬프기 그지없다. 머리숱만큼은 굵은 마당 빗자루를 능가했건만 오호통재라!  


 내가 아닌 듯하다.


 잔디밭처럼 올라오는 흰 머리카락을 길러보려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며 눈을 부릅뜨며 머릿속을 쳐다본다. 검은 털이 한 개도 없이 모두 흰색이 올라온다. 친정아버지같이 흰머리 휘날릴 기회가 왔다. 자꾸 보니 희끗희끗한 것이 친정 엄마 얼굴도 나오고, 흰머리가 낯설어 조금 오버하면 무섭기까지 하다. 자꾸 눈을 치켜뜨고 거울을 봐서 그런지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린다. 뭐 이렇게 늙었나 싶고, 지하철에서 노인이라 자리 양보받은 것을 생각하니 심란하다. "뭐 젊은 아이들도 그레이 빛 염색도 하는데!"라고 말을 해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동네 목욕탕에서 흰머리를 한 어른들을 붙들고 물어봤다.  한 일 년 길러야 전체가 하얗고 눈처럼 곱게 된단다. "겨울철이 찬스야! 모자를 뒤집어쓰고 10센티 기를 때까지 견뎌" 올터 구니  빨간색 빵떡모자를 하나 샀다.  어디 그림 그리려 가야 할 화가 같다. 안 어울린다.




분주한 마음이 먼저 가라앉아야 육신이 편안했다.

2020년 첫날 결심한다. 파뿌리로 살기로.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말하지만, 내 머리카락이 한 달 한 달 더 하해지는 것을 보면서 "또 염색할 때가 됐네" 지겨워도 하며 지나갔다. 떡국에 넣을 파를 썰다가 흰머리를 하루 종일 마음에 품느라 온 마음이 풍선처럼 둥둥 떠있다.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가라앉을 터이니 며칠 이래야 하겠지. 흙이 묻는 파뿌리를 이렇게 오래 보고 서 있다.





2020년 1월 1일 맑음. 새해 첫날 2020이란 숫자가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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