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돌길과 뜨거운 발

by 바보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이탈리아 돌길을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 밤이 되면 발이 뜨거워진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번 이탈리아 여행 동안 매일 밤마다 이 대목에 공감했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하루 종일 3만보에서 5만보를 걷다 보면 혈액순환이 얼마나 잘되는지 발이 덥다 못해 뜨거워서 이불 밖으로 발만 쏙 빼놓아야 했다. 그리고 뜨거워진 발과 더불어 만성적인 두통과 요통이 사라졌다. 돌길에 캐리어 바퀴가 부러져서 여행 내도록 고생한 기억 때문에 그간 웬수로만 여겼던 돌길인데, 이 웬수가 내 두통과 요통을 치료해주었다 생각하니 갑자기 복덩이로 느껴졌다.


발이 뜨거운 감각을 어려서는 자주 느꼈었다. 이를 분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겨울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길에서 만난 어떤 아줌마에게 혼이 났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가 살던 달동네 마을은 정에 기반한 공동육아의 문화가 있었던 것 같다. 골목에서 위험한 놀이를 하거나 비윤리적인 혹은 비위생적인 행동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어른들은 누구라도 발견 즉시 혼을 내셨다. 그날의 나는 이렇게 추운 날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사람은 제정신이라 말할 수 없다는 요지로 혼이 났고 그 덕분에 혈액순환의 전성기 시절을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수십년간 기억에만 존재했던 뜨거운 발의 감각을 돌길이 되살려 주었다.


우리가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딛는 모든 발걸음은 평평한 땅 위에 내딛는다. 그마저도 대부분 폭신한 운동화나 슬리퍼가 땅과 발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 전달되는 자극이 남아나지 않는다. 만약 태초의 인간처럼 맨발로 맨바닥을 걸어 다닌다면 발마사지 하시는 분들은 직업을 잃게 되고 지압 슬리퍼를 생산하는 회사는 파산하게 될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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