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나는 말수가 없는 편이다. 그런데 수다가 터지는 경우가 있으니 그건 안심하고 나의 많은 부분을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경우다. (제 글을 많이 읽으신 독자님이라면 저를 수다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건 아마도 독자님들을 안심하고 나의 많은 부분을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친한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대학시절, 유독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스무 살 모태솔로의 불타오르는 연애 갈망을 수다로 풀어냈으니 밤은 늘 짧았다. 밤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냐면 이런 식이다. 혈액형별 성격 유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각종 성격유형 검사의 변별력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유형 검사지를 찾아내서 서로의 성격 유형을 파악한 후, 이래서 우리 둘이 절친일 수밖에 없다며 한차례 얼싸안고, 어떤 유형의 여자 친구를 만나야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한다. 사실 이걸 위해 밤새 달려온 것이다! 그러다 딱 너 같은 이성친구를 만나면 좋겠다는 훈훈한 발언에 애매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고,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쁜 '민순이'의 성격 유형은 무엇일지 예측해보기도 한다. 이런 대화가 하룻밤 사이에 끝날 수 없으니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거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그 친구와의 추억이 지금에 와서는 내 입을 더욱 닫게 되는 원인이 되었으니, 그것은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두려워 한번도 꺼내지 못한 채 덮어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종교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교인이라는 사실이 나의 언행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또한 나의 작은 그릇 혹은 못난 인격이 드러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친구와 헤어지게 된 사연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이 꽤나 흘렀고, 언젠가 한 번쯤은 어떤 식으로든 꺼내어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느 곳에도 기록하지 않고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면 언젠가 노화와 더불어 그 친구와 함께한 내 삶의 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기록하려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거리가 제법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연락이 점점 뜸해졌다. 뜸해지고 뜸해지다 결국 끊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우리 @@가 좀 이상하다, 그러니 좀 와주면 안 되겠냐는 부탁의 전화였다. 처음 통화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느껴져, 초보운전자가 세 시간 거리의 초행길을, 그것도 밤길을 운전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퇴근 후 잔뜩 쌓인 피로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그 친구의 집으로 찾아갔다.
@@는 집에 없었다. 교회에서 기도를 받고 있다 했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부모님과 함께 늦은 식사를 했고, 불편한 식사를 하며 불편하고 또 슬프고 또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친구는 처음 직장생활을 하며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다가, 어느 날 고백을 했는데 매몰차게 차였다 했다. 여기까지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 친구가 유독 마음이 여렸던 건지 아니면 차일 때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꼈던 건지 친구는 미쳐버렸다 했다. 제 아무리 독한말을 했어도 미쳐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그 여자분에게 물을 수는 없었지만, 부모님은 정신을 잃어버린 아들을 보며 그 여자분에게 서운함을 지울 수 없는듯했다. 차더라도 좀 부드럽게 타이르듯 했으면 좋았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는데 그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가족과 함께할 때의 친구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밝고 쾌활했던 그 친구는 집에 오면 가족들과 말을 하지 않았고, 부모님과의 다툼이 많았으며,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 동생을 보며 부모님이 동생만 사랑한다며 서운함을 종종 드러냈다 했다. 내가 친구 마음의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지 못했음이 미안했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도 약간은 들었으며, 마음을 터놓을 이가 한 명도 없는 고향으로 돌아와 많이 외로웠겠다 싶었다. 그리고 친구가 집으로 돌아왔다.
@@는 나를 알아봤다. 그런데 눈빛은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초점이 없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니면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나를 알아보고 '왔구나'라 짧은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도무지 속마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방에 들어가 둘이 이야기를 나눠보라 했다.
방에 들어온 친구는 이상한 말을 했다.
"내가 성경책을 읽다가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됐어. '사후 세계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해서 창조했다'라고도 되어있지. 그런데 그 둘은 서로를 부정하는 말이야. 생각해봐, 너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있어, 그런데 그 사랑하는 아들이 생명을 다한 이후에는 영원한 고통을 받으라고 지옥을 만들어 놓겠니? 인간을 사랑해서 창조한 것이지 선한 자들, 죄 없는 이들만 사랑해서 창조하신 게 아니잖아. 죄 있는 자들도 사랑하는 거잖아. 그런데 지옥을 만들어 놨다면 사랑해서 창조한 인간 중 누군가는 그곳에 가서 끝없는 고통을 받아야 하잖아. 그게 말이 되니?"
대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친구는 갑자기 피곤하다며 자야겠다 했다. 그리고 불을 꺼달라고 부탁해서 일어나 불을 껐는데, 어둠 속에서도 누워있는 친구가 눈을 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서웠던 나는 당연히 잠들 수 없었다. 친구는 갑자기 일어나 화장실에 갔고 잠긴 문틈새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릴듯 말듯하게 새어 나왔다. 나는 문가로 조심스레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친구는 '##는 안돼, 내 친구야. ##는 안돼, 내 친구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온 친구는 벌거벗고 있었다. 거실에 계시던 부모님이 놀라서 옷을 입히려 했지만 저항했다. 그리고 뛰쳐나가 아파트 층계를 엄청난 속도로 뛰어 올라갔다. 아버님은 따라 뛰어 올라갔고, 어머니는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안 되니 1층 입구에서 지키겠다며 뛰어 내려가셨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친구가 지옥이 존재하지 않음을 내게 이야기한 것은 자살을 암시한 것일지 모른다 직감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친구는 없었고 층계 아래에서 아버님과 친구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버님을 도와 친구를 붙들려했으나 너무나 힘이 강했다. 아버지는 친구 이름을 계속 불렀고, 친구는 조금 정신이 드는지 제 발로 걸어 집으로 들어갔다.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와서 연행하듯 친구를 교회로 데리고 갔고, 그곳에는 이미 수십 명의 신도가 모여있었다. 목사님은 귀신이 씐 거라며 안수기도를 했고, 수많은 성도들은 그 친구가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고서 합심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엄청난 괴성을 지르며, 엄청난 괴력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밀어내고 교회 밖으로 뛰어나가 사라져 버렸다. 어머님은 우시고, 몇몇은 어머님을 위로하고, 또 몇몇 성도들은 뒤를 쫓았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30분~1시간 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지났을 때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이 집에 왔는데 아무 기억도 못한다 했다. 집에 돌아온 부모님은 왜 뛰쳐나갔냐 물었지만 그 친구는 전혀 기억이 없다 했다. 돌아온 친구를 확인하고,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부모님께 전하고 돌아왔다.
몇 년이 지나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이후로 정신과 치료를 오랫동안 받았으며 그 결과 지금은 정상이라며 나를 꼭 만나고 싶다 했다. 주소만 알려주면 본인이 오겠다해서 주소를 알려줬고, 3시간 거리를 달려온 친구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2시간도 안되어 헤어졌다. 해지기 전에 출발해야 위험하지 않다며 이만 가는 게 좋겠다 했지만, 실은 내 마음이 친구를 밀어냈던 것 같다. 비정상인지 정상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면 친구는 정상에 속할 만큼 호전되어 있었지만, 분명 밤새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과거 내가 사랑했던 친구의 모습과 무서웠던 모습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멈춘듯했다.
또 몇 년이 지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내가 보고 싶다 했다. 나도 보고 싶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 두려움이나 꺼려짐이 전달되었는지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친구는 잘 지내라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친구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너무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살아서 연락처가 없음을 변명삼아 미안한 마음을 삼켰다. 외로운 친구에게, 내가 꼭 필요했던 순간에 진정한 벗이 되어주지 못했음에 대한 죄책감도 함께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