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홍박사

by 바보


나의 고3 수능 전략은 우리 반 1등이었던 홍박사 따라 하기였다. 그 친구는 무려 '공부가 제일 재미있다.'라는 말을 순수한 눈빛을 한층 더 반짝이며 뱉을 수 있는, 내가 아는 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삼색 볼펜, 삼베 방석 등 홍박사 에디션을 구입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그의 엄청난 공부량을 감히 따라 하는 이는 없었으니, 무얼 하든 장비빨에 목숨 거는 건 인간의 본성이지 싶다.


나 역시 홍박사 에디션을 구입하고 어떻게든 홍박사의 은총을 입어 조금이라도 성적을 더 올려보려는 인간계 일원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홍박사를 넘어보겠다는 불순한 마음도 있었으니, 그의 뒷자리에 앉아 그가 공부하는 동안에는 나도 공부하고, 화장실에 갈 때는 나도 똑같이 가고(굳이 마렵지 않아도 생체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닷!), 도시락도 같이 까먹어서 동일한 영양소를 뇌에 공급하는 등 당시에는 처절했고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노력을 했었다. 물론 홍박사는 내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던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말은 정말 쑥스러운데,, 사실 나는 공부를 제법 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박사의 벽은 높았다. 토익 900점도 잘한 거지만 990점 만점에 닿기까지는 수많은 해자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100m 달리기 기록이 10초 플랫이면 엄청나게 빠른 기록이고, 우사인 볼트의 기록인 9초 58과 고작 0.42초 차이지만, 그 0.42가 인간계의 노오력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장벽이 되는 것처럼, 홍박사는 나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어느 날, 홍박사가 아우라를 뿜어대며 미친 듯이 공부했던 그 날, 화장실도 안 가고 몇 시간째 엄청난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던 그 날, 나도 오기가 생겨 '내 엉덩이는 걸상에 딱 붙어있다!!!' 자기 암시를 하며 공부했던 바로 그날 문제가 터졌다. 해가 지고 야간 자율학습의 끝이 다가오고 있을 때쯤, 편두통이 시작되었다. 두통이 점점 심해졌지만 멈추지 않고 오기로 공부하다 핑- 현기증이 왔다. 결국 한계에 부딪혀 기지개를 켜다가 앞이 깜깜해졌고, 정신을 잃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교실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수십 명의 친구들이 나를 빙 두르고 서 있었고, 마음씨 좋은 친구는 나를 부둥켜안고 내 이름을 연거푸 부르고 있었다. 그 날이었다. 내가 인간계를 넘어 보겠다는 불경한 시도를 멈춘 게, 스스로 쌓은 바벨탑을 허문 게 바로 그 날이었다.


홍박사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성이 홍 씨라 생각하는데, 사실 홍박사의 성은 홍 씨가 아니다. 단지 이름에 홍자가 들어갈 뿐인데, 우리 반 누군가가 그를 홍박사라 부른 바로 그 순간 그의 이름은 사라졌다. 선생님들도 그 찰떡같은 별명에 미혹되어 친구의 본명은 잊으신 듯했다. 풀이 과정이 복잡한 문제가 있으면,

"홍박사야, 나와서 칠판에 풀어봐라~"

누가 선생님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면,

"아~~ 그거는 홍박사님이 잘 알고 있을끼다."

이런 식이 었다. 이쯤 되면 이 친구의 본명이 무척 궁금하겠지만, 만에 하나 내 친구에게 누가 될까 염려되어 단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하면 이 친구의 학력, 소속, 경력, 업적이 줄줄 뜰만큼 공인이기 때문인데, 혹시 내 이름도 나올까 싶어 검색해봤지만 돌아온 건 열등감과 패배감뿐이었다.


그 친구보다 공부는 못했지만 나름 자긍심이 높은 아이였기 때문에 그 친구와 맨날 붙어 다니면서도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나의 높았던 자긍심은 무너졌다.


때는 바야흐로 수능 직후, 홍박은 사회생활을 경험할 기회라며 같이 공장에서 일해보자 제안했다. 수능과 대학 입학 사이에 존재하는 2~3개월의 공백기는 만화책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황금기이지만, 데미안 같은 친구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어 공장에 쫄래쫄래 따라갔더랬다.

첫날 공장장님을 만나 업무 분장에 앞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는데, 홍박사가 수능에서 아깝게 하나를 틀려 만점을 놓친 인재임을 알고 깊은 감명을 받으신 듯했다. 그런 인재가 본인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니 영광이라며 고급 브레인에 걸맞게 앨범 수량, 단가, 매출, 인쇄지 잔량, 잔업 시간 등을 체크하는 꿀보직을 주셨다. 사실 사칙연산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가만 보면 족구 라인은 홍대 미술과 학생이 그린다는 군대의 부조리가 이 사회에도 만연하다.

아! 우리가 일한 공장이 졸업앨범 공장이었는데, 11월, 12월이 가장 바쁜 시기여서 일손이 많이 달린다. 그 덕분에 우리 같은 초짜에게도 일할 기회가 생긴 거다. 졸업앨범 사진이 원판으로 나오면, 테두리를 잘라내야 하는데 가위로 한 장 한 장 자르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큰 기계 절단기로 잘라서 재단해야 한다. 공장장님은 나에게 그 손가락이 함께 잘릴지도 모를 종이 재단하는 일과 허리가 반으로 접힐 듯이 무거운 앨범 원단을 나르는 일을 주셨고 더불어 내 인생 최초의 열등감도 듬뿍 안겨 주셨다. 나도 수학은 만점인데.. 사칙연산은 내가 더 빠른데.. 그놈만 없으면 나도 제법 브레인인데..


이대로 글을 마치려다, 그러면 원수 지고 끝난 것처럼 느껴질까 염려되어 몇 자 붙인다. 대학에 진학하고도 외로운 타향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꽤 오래 우정을 나눴다. 그러다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늦은 나이에 그 친구가 군법무관으로 군대를 가면서 연락이 뜸해지다가, 내가 국제협력으로 군대를 가게 되어 한국을 떠나면서 연락이 완전 끊겼다. 그러다 휴가 때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트렌짓으로 싱가포르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중, 홍박사와 여자 친구(어쩌면 아내)를 발견했다. 홍박사는 검정 뿔테 안경을 더 이상 쓰지 않았고, 더불어 우리 동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잔뜩 묻히고 다니던 촌티를 다 떼어내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설국열차의 꼬리칸 친구가 알고 봤더니 1등 칸 시민이었다면 이만큼 놀랄까? 그 여자 친구는 또 얼마나 자체 발광하던지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타국에서 친구와 마주친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장면은 얼싸안고 반가움을 나누는 장면이겠으나, 나는 아는 체도 못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색이 바랜 반바지, 낡은 슬리퍼 차림의 나 자신이 1등 칸 시민 홍박사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되돌아와 정말 홍박사가 맞는지 훔쳐보지는 말았어야 했다. 훔쳐보다 여자 친구와 눈이 마주쳤을 때 도망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날의 열등감을 지금껏 곱씹지는 않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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