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간지점을 지나 나라는 사람을 기록하기 시작한 지 1년 7개월이 흘렀다. 학창 시절의 리포트나 직장에서의 기획서가 아닌 순수한 나의 글을 처음으로 썼던 날이 2018년 12월 25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상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어떻게 변해왔는지 쓰려고 서재 컴퓨터에 앉아 타이핑을 시작했는데, 좀처럼 글다운 글이 써지지 않았다. 보고서나 기획서는 진절머리가 나도록 또 터널 증후군이 생겨 손가락 끝이 저리도록 많이 쓴 나인데, 정작 나의 글은 써지지가 않아서 한 페이지를 겨우 채웠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흘렀다.
다시 마음을 잡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약 1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다시 시작했을 때에는 웬일인지 속도가 조금 붙어있었다. 우물에 물이 고이는데 필요한 시간으로 표현할지, 윈도우 메모리 조각모음을 하듯 기억의 파편들이 뭉쳐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표현해야 할지 고민되는데, 컴퓨터에 비유함은 뭔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거북스럽기도 해서 우물 비유에 마음이 더 끌린다. 그래, 우물로 하자!
나라는 우물에 물이 어느 정도 고여 퍼올릴 수 있게 되었음을 인지하고 긷기 시작했다. 한 바가지 퍼올리고, 일주일쯤 지나 한 바가지 또 퍼올리던 것이 요 며칠 사이에는 하루에도 세 네 바가지 퍼올려도 될 만큼 물의 양이 많아졌다. 오늘 차오른 물을 오늘 퍼내지 않으면 땅으로 흡수되거나 증발해서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함에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걱정이 스멀스멀 솟아오른다. 너무 다 길어내서 바닥을 드러내면 어쩌나 하는 불안. 나라는 인간이 좁고 얕음을 확인하는 그 순간이 당장 오늘일 수 있다는 불안.
만화광이었던 학창 시절에 가장 열광했던 만화가가 있었으니, H2, 터치, 러프와 같은 대작을 탄생시킨 아다치 미츠루 만화가님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그 드라마의 메인 작가나 감독 등 드라마 스토리에 영향력이 큰 누군가는 분명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일단 '응답하라'라는 제목부터가 러프의 가장 중요한 대사였고, 인물의 구성이나 대사 스토리 등 아다치 미츠루의 세계관이 곳곳에 녹아 있다.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라는 곡 역시 H2 만화 내용을 모티브로 했음을 팬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대작을 탄생시킨 대 작가인데 최근의 작품들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림은 더 세련되어지고 스토리는 더욱 정교해졌다 평가하는 이들도 있고 나 역시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아다치 미츠루라는 우물은 바닥이 나고 이전에 퍼올렸던 것들을 답습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하루키의 작품은 어떠한가? 번역하는 과정에서 무뎌졌음이 분명함에도 여전히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표현력 하며 지독하다 표현될 정도로 어너더 레벨을 보여주는 상상력을 보면 인간이란 종의 한계를 보여주는(우사인 볼트가 인간 속도의 한계를 보여주듯) 작가 중 한 명이라 생각하는데, 그 대작가가 요즘 들어 발간한 책들을 보면 여전히 재미있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은 슬픔에 가깝다. 아버지의 어깨가 좁아 보일 때 느껴지는 슬픔과 비슷한 감정이다.
대 만화가, 대 작가의 우물도 그 끝은 있다. 그렇다면 나의 우물에는 얼마만큼의 물이 고여있을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 작가와 나를 비교할 수 없다. 굳이 비교한다면 태평양과 간장종지로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반평생을 기록하는데, 책 한 권의 분량도 되지 않고, 그 내용은 손자가 듣다가 하품할 내용이라면 자신이 초라해질 것 같다. 애초에 자기애로 똘똘 뭉친 사람은 아니지만, 손자 앞에서 간장 종지를 가리키며 '저게 할아버지란다.' 말하는 건 슬픈 일이다. 차라리 그간 기록했던 모든 글을 지우는 게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
좀 다른 이야기인데, 며칠 전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좀처럼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주제는 비교적 쉽게 쓰이는데 어른이라는 주제는 답이 내 안에 있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진정한 어른이란 이런 거라고 누군가를 가르치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그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화자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는데, 그랬더니 그때부터 글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렇게 탄생한 '불온 동화'와 '갑자기 어른이 된 소년'을 다시 읽어보며 참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이러한 이야기는 내 안에 없던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이건 우물에서 물을 퍼올렸다 표현하기에 어폐가 있고, 다른 표현을 써야 할 텐데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된다. 손가락이 움직여서 써졌다고 할까? 아니면 어른이라는 주제로 생각하다 구상한 이빨 빠진 소년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표현할까? 아무튼 소설가가 글을 쓰는 감각이란 이런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