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활용되는 성격유형검사 중 하나인 MBTI를 대학에 와서 처음 했을 때, 나는 ISTJ가 나왔다. 이 유형의 특징을 살펴보면, ISTJ는 인내심이 많고, 성실하며, 계획적이어서 규율과 체계의 억압 하에서도 묵묵히 주어진 학업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성격유형이다. 그러다 보니 고3의 터널을 막 빠져나온 신입생의 경우라면 학업성취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성형했을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 했다. 다시 말해, 규율과 체계의 억압이 적은 대학생활을 거치면서 본연의 성격 특성이 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단 말이다. 해서 2년쯤 지나서 다시 검사를 받았더니 이번에는 I(내향성)만 빼고 나머지가 모두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시차를 두고 수차례 검사를 더 받아봤지만, 그때마다 변함없이 INFP가 나와서 그걸 나의 유형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INFP가 ISTJ로 수년간 살아왔단 말이고, 그렇다면 에너지가 향하는 방향인 E와 I를 제외한 나머지 성격 특성은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단 하나,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만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처럼 사는 것 또한 참으로 힘든 일이겠으나, 외향성을 우성으로 인정한 사회에서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40년을 사는 동안 외향적인 성격을 흠모하고 부단히 시도해 봤지만 이것만은 도저히 안되더라. 나처럼 고통받았던 수많은 I들은 뼈저리게 이해하고, E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테지만.
어려서 술래잡기를 할 때도 I들은 늘 억울한 일을 당한다. 가능한 자주 가능한 큰 목소리로 발표하는 것이 미덕인 초등학생 시절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학생이 되면 다를까? 토의에서 의견을 내지 않는다고 핀잔받기 일쑤고, 그러다가 모둠 과제에서는 가장 힘든 일을 떠맡기 일쑤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다를까? 우리 I들은 첫 만남부터 양해를 구하며 시작한다. '죄송한데,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요. ' '내성적인 성격이라 목소리가 떨립니다. 미미미 미안합니다.' 이런 구차한 양해가 익숙하다. 가능한 더 자주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E들에게 이끌려 참석한 수많은 MT, 회식, 각종 모임 때마다 기가 쏙 빠져서야 돌아온다. 집에 일찍 가려면 어김없이 E들에게 붙잡힌다. 이 세상은 E들의 세상인 것이다. 아니 E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리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었다. 만남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E들은 맥을 못 추고, 심한 경우 코로나 블루로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는데 반해 I들은 비교적 자유하다. 혼자만의 시간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간 보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내면에서 뭉쳐진 생각들을 꺼내어 글로 옮기는 등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는 여유도, 혼자만의 시간으로 할당된 시간의 절대적 양이 늘어났기에 가능했다.
물론 코로나가 하루빨리 물러나기를 바라지만, 그간 I들이 E들의 눈치를 보며 모임에서 빠져야 했다면, 오히려 E들이 눈치를 보며 모임을 제안하는 작금의 신풍경이 내심 반갑다.
'제가 외향적이라 혼자 등산하는 건 아무래도 외로워서... 이번 주말에 같이 등산을...... 역시 어렵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