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근간은 권력의 합리적 배분에 있다. 전지전능하며 절대적인 선을 지향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면 굳이 권력을 분배할 필요 없이 그 절대적 존재에게 모든 권력을 전임하고 팔로우하면 되겠으나, 당연히 절대적 인간은 없다. 자신을 신격화한 지도자는 많았지만, 그들이 보여준 리더십은 오히려 인간 군상의 평균 이하를 보여줬으니 집중된 권력은 부패함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그러니 '권력을 나누어 갖자'는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매우 합리적인 외침이다.
70년대도 80년대도 아닌 2020년 오늘날 '민주주의'를 다시 꺼내어 외치는 풍경은 다소 의아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어느 누가 부정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러한 의아한 눈길을 거두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재자를 타개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을 무력화하자던 그 시절의 풍경과는 다름을 발견한다. 오늘날의 외치는 소리는 사회 곳곳에 잔재한 수직적이고 구태의연한 조직문화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렇기에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갑분민? 갑자기 분위기 민주주의?
이런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회의 중간에 회의실 문이 열려 있음을 발견한 나는
'어? 문이 열려있네? 다른 부서에 방해가 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고, 혼자 중얼거리듯
"문 닫아야겠네."
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나이 어린 순서대로 서너 명의 직원들이 일어났다가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폈고, 그 가운데 가장 어린 직원을 제외하고는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가장 어린 직원은 나보다 빨리 문에 도착하기 위해 속도를 냈고, 나와 나이 어린 직원은 경보하듯 뒤뚱거리며 회의실 문을 향해 돌진하는 웃기면서도 일각 씁쓸한 장면을 만들었다. 말이 길었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이 해프닝 때문에 우리 조직이 과연 민주적인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나름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자부했던 마음 때문에 그저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없어 집에 와서도 생각했다. 아무리 편하게 해주려 해도, 그 한계는 결국 마음씨 좋은 병장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씨 좋은 병장이 우리 사회에 많아진다 해서 군대 문화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며칠 뒤 한 친구가 유기동물보호센터에서 고양이를 입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름도 없고 정 붙일 곳도 없던 고양이에게 '시바'라는 예쁜 이름과 아늑한 안식처를 선물했지만, 불쌍한 시바는 조그마한 발톱을 바짝 세우고 며칠 동안 그르렁거렸단다. 그르렁거림을 멈춘 시바는 또 며칠을 구슬프게 울었단다. 냐아옹~~ 냐아아하~~. 예쁜 시바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던지 한참을 울더니 어느 날 곁에 와서 앉았단다. 그리고 요즘에는 주인님이 되어 집사를 마음대로 부린단다.
군대식 조직문화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더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결국에는 그 상처를 치유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비로소 마음씨 좋은 병장을 넘어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존경하고, 믿고, 의지하고, 따를만한 '진짜 어른'을 바라고 기다리던 젊은이들의 타는듯한 목마름을 해갈할 그날도 함께 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