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보톡스는 젊은 생각이다.'란 말을 듣고 예전 어느 성형외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눈매, 입가주름, 콧망울, 피부, 턱선, 치아 등 많은 요소가 있지만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이 눈빛이라 했다. 그런데 눈빛은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차순위의 것들에 손을 대는 건데 그게 쌍꺼풀 수술이고, 보톡스고, 치아교정이라는 거다. 그런데 만약 눈빛을 변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성형외과가 있다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겠지? 그런데 그 병원의 비결을 물으면 아마도 그건 젊은 생각을 심어주는 게 아닐까?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자연스레 '젊은 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들은 대부분 정답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답을 찾기 위해 구도자의 삶을 산다. 다만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고마운 이들 덕분에 힌트를 종종 얻을 뿐이다.
'젊은 생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힌트는 동네에 새로 생긴 선술집 사장님에게서 얻었다.
자그마한 가게에 엄청난 음질의 오디오가 놓여있었다. 막귀인 내 귀로도 스피커의 남다른 클라스가 느껴져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건희 삼성 회장님도 가지고 있다는 2억짜리 스피커란다. 조그마한 선술집에 지나치게 호사스러운 스피커가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연이 있었다. 사장님이 작년에 큰 교통사고가 나서 수개월간 사경을 헤매셨단다. 죽을 수도 있었고,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건강을 회복해(아직 거동은 불편하셨지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그동안 마음에 담아만 두었던 스피커를 구입한 일이라 했다.
선술집 사장님과의 만남 이후에 질문만 하나 더 붙었다.
'만약 내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바꿔 말해, 인생이 언제든 끝날수 있음을 지각한다면 타성에 젖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지는 않을 테고, 아마도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되거나 진정한 보람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할 텐데, 문제는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기쁨이 뭔지 분명하게 안다. 아들 H군은 한때 박지성 축구교실에서 축구를 배우는 게 소원이라 했다. 그다음 해에는 피아노를 배우는 게 진짜 소원이라 했다. 그러다가 축구가 아니라 아빠랑 캐치볼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피아노는 오히려 끊는 게 소원이 되었다. 어떤 날에는 가족과 함께 밤새 보드게임하는 게 소원이라 했고, 아주 어렸을 때에는 팽이치기로 아빠를 이겨보는 게 소원이라 했다. 생일에는 닌텐도 스위치 동물의 숲 에디션만 사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했고,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자전거만 있으면 진짜 진짜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했다.
H군의 욕망에 더없이 솔직한 모습을 지켜보며, 어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진정한 기쁨이란 말에서 '진정한'이란 수식어가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진정한 기쁨이 뭐란 말인가? 내 마음에 끓어오르는 열망을 보며 '이건 진정한 열망이야! 이건 가짜야!'라고 무슨 기준으로 판단한단 말인가?
'H군, 처음엔 피아노만 배우게 해 주면 소원이 없다더니 이제와 피아노를 끊는 게 소원이라고 뻔뻔하게 말하다니! 이봐~ 이봐~ 이제 알겠지? 네 마음은 가짜야. 진정성이 없어.'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나? 열망이 솟아올랐다 사라질 수도 있고, 또 계속될 수도 있는 거지 중간에 사라진다고 진정성이 없다 비난할 수 있나? 수십 년 피아노를 친 피아니스트가 은퇴를 앞두고, '이제는 피아노는 그만 치고, 낚시나 하고, 바둑이나 두며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면, '당신은 엉터리 인생을 살았어!'라고 비난할 사람이 누구인가? 낚시나 바둑은 추구할 가치가 없다 누가 말할 수 있나? 오늘까지는 피아노가 기쁨이었고, 내일부터는 낚시가 기쁨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자, 흥분을 가라 앉히고, '진정한'이란 거추장스러운 단어는 일단 던져 버리자. 이제 나에게 무엇이 '기쁨'인지 생각해보자....... 흠.. 여전히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욕망들은 모두 봉인된 듯하다. 오히려 은퇴 후에 뭐할까 생각하면 몇 가지 떠오르는데 지금 당장은 도통 모르겠다. 수십 년간 내 욕망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언젠가 목소리를 잃었나 보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의 하루는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다. 생명유지와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들만 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 경각심이 들어 무언가 해보려다가도,
'박대리처럼 헬스를 시작해볼까? 아니지.. 이 나이에 식스팩이 있어서 무엇하나.'
'최과장이랑 등산 크루나 따라다녀볼까? 아니지.. 올라가면 다시 내려와야 할 산을 무엇하러 올라가나.'
이런 식이다. 이러니 생각이 늙지. 생각이 늙으니 영혼이 늙고, 영혼이 늙으니 눈빛이 늙고, 몸이 늙고, 아프고, 그러다 골골하다 죽겠지.
사실 은퇴 이후에는 건강이 허락할지 혹은 살아나 있을지 알 수 없는데, 그때 가서 무엇을 하자는 생각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대신 오늘 뭐하고 싶은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처음부터 잘할 수 없지. 한걸음 한걸음 기쁨을 추구하는 본연의 욕망을 되살려보자.
그래! 팥빙수로 시작하자! 그다음엔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라보자! 내친김에 30년 전 체르니에서 멈췄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