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꿈이었꿈

by 바보

꿈을 꿨다. 이 새벽에 눈을 뜨는 경우 대부분 악몽이다. 하드코어한 악몽도 있겠으나 나 같은 경우는 '휴~ 꿈이라서 다행이다.'라 생각하게 되는 정도의 꿈을 자주 꾼다. 이를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경미한 악몽? 말 그대로 '휴 다행히도 꿈이었다 생각하는 꿈'? 이걸 좀 줄여서 '다행히 꿈이었꿈'으로 하자!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나는 꿈이라던가, 아끼는 새차가 접촉사고가 나서 속상해하는 등의 '다행히 꿈이었꿈'을 꾸고 나면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전개한다. 하나는 운세를 점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영역을 탐색하는 방향이다.

운세를 점치는 것은 당연히 근거 없는 사유놀이에 불과하다.'좋은 꿈을 꿨으니 로또를 사야겠다!' 혹은'기분 나쁜 꿈을 꿨으니 조심해야겠다!'라는 식의 생각을 한다. 하지만 돼지꿈, 똥꿈, 용꿈, 대통령꿈, 조상꿈, 연예인꿈 등등의 별별 좋다는 꿈은 다 꿨어도 아직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걸로 봤을 때 과학적인 접근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이모부의 꿈 때문이다.


로또가 2000원 하던 시절, 이모부는 전형적이면서 명확한 로또 꿈을 꿨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꿈에 나타나 숫자 6개를 불러주신 것이다. 꿈에서 깬 이모부는 숫자 6개를 기억하려 애썼지만 3개를 명확하게 기억하고 나머지 3개는 아리송했단다. 그래서 정확한 숫자 3개를 기본으로 하고 아리송한 숫자 3개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대입해서 총 50개의 숫자 조합을 만드셨단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고 유난히 일이 바빠 로또를 사지 못하다가 마감시간 20분을 남기고 마음이 급해져서 로또 판매점으로 달려가셨단다. 가는 길에 현금 10만 원을 찾고, 큰길 두 개를 건너 로또 판매점에 도착했을 때의 남은 시간은 대략 3~4분, 40개의 숫자 조합을 마킹했는데 마감시간이 임박했단다. 서둘렀으면 나머지 10개의 조합도 마킹할 수 있었겠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숫자를 보고 온 게 아니라 단지 꿈에 불과하니 무리하지 않으셨다. 결과는 4등과 5등 무더기 당첨! 그런데 기입하지 못한 나머지 10개의 숫자 조합에 1등과 2등이......

아직은 이른 나이에 회사에서 밀려나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이모부는 좌절했다. 상심이 너무나 커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며칠을 보내셨다.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는 마을에 순식간에 퍼지는데, 대게 화자의 해석이 덧입혀진다. 누군가는 귀신의 장난이라 했고, 또 누구는 운명의 장난이라 했다. 주체가 귀신이든 운명이든 장난질을 당한 이모부님은 깊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반쯤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셨고, 이를 딱하게 여긴 이웃의 소개로 한 절에 들어가서 한 달을 지내고서야 사람 구실 할 정도로 정신을 찾아서 돌아오셨다.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흥미로워하지만 딱히 진실로 받아들이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강건했던 이모부님의 넋이 나간 모습을 본 나로서는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 초자연적인 영역에 대해 완전히 부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꿈으로 운세를 점치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행위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을 제공한다. 비이성적이고 근거 없다 판단하면서도 '혹시 이 꿈은 좋은 일을 예견한 꿈이 아닐까?'라 생각이 드는 걸 어쩌겠는가?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도 하니 굳이 막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꿈을(자주 난다. 숨을 참으면 풍선처럼 몸이 떠오른다.) 꾸거나, 좋아하는 유명인을(유재석 님과 문 대통령님을 가끔 본다.) 만나는 등의 기분 좋은 꿈을 꾸고 나면 행운이 찾아올 거라는 비이성적인 생각이 샘솟는데 그것을 애써 끊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꿈이었꿈'은 다르다. 불운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솟아오르면 '개꿈이지 뭐, 하지만 좀 더 후배들을 배려하고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양보운전 안전운전 하자.'정도로 끊어낸다. 그리고 대학원 시절에 공부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살펴본다. 왜곡되어 표현된 꿈을 통해 자아와 초자아에 의해 가려진 이드가 욕망하는 바를 살피고, 그 욕망이 의식의 수준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무의식에 머물러있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것이다.


좋은 꿈은 초자연적인 영역이고, 나쁜 꿈은 심리학의 영역이란 근거가 뭐냐고? 없다. 그냥..내 맘이다..


그렇다. 나는 돌팔이다... 그러니 상담사 자격증이 있음에도 영업을 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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