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앞둔 선배들이 술자리에 부르면, 술을 마시지 않음에도 거절하지 않고 참석한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음을 주변 사람 모두가 알고 있으니 애초에 같이 술 마시자고 부르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생명의 끈을 힘겹게 부여잡고 자녀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심정인 것이다. 사회인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하는 쓸쓸한 순간을 아끼는 몇몇 후배들과 함께하고픈 그 마음을 잘 알고, 그래서 꼭 전하고 싶은 유언이 있음을 잘 알기에 공사다망함 중에도 굳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참석한다.
마지막 때야말로 발톱을 드러내는 자기과시나 속살을 보호하려는 사회적 겸양을 쏙 뺀 담백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적기이다. 그 조언이 무엇인지 글로 쓰고 나면 뻔하디 뻔하고 흔하디 흔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흔해빠진 말이 선배의 인생이 담겨있는 귀한 유언임을 아는 몇몇 후배들의 마음에는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오랫동안 맴돈다.
선배 1은 절대로 남이 밥상을 차려주지 않는다. 자기 밥, 자기 반찬, 자기 숟가락 젓가락을 절대 남이 챙겨주지 않는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기 밥그릇을 지키라는 말을 남겼다. 멋대가리 없는 말이지만, 본인도 기왕이면 우아한 말을 남기고 싶었겠지만, 가장 아끼는 후배들에게 꼭 남기고 싶었던 말은 어쩔 수 없이 자기 밥그릇 잘 지키라는 그 말이었으리라. 유난히 고달팠던 선배의 인생이 담겨있는 유언이었다.
선배 2는 철저한 인생 계획을 강조했다. 세상이 워낙 휙- 휙- 바뀌기 때문에 적어도 5년 단위로 계획을 수정해야 함을 더불어 강조했다. 선배 2는 퇴직 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난 10년간 고민했지만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해서 일단은 귀농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려는 게 계획이라 했다. 그리고 벚나무를 앞마당에 한가득 심는 게 귀농 후 첫 번째 계획이라 말하는데, 한 후배가 벚나무에는 벌레가 많이 꼬여서 토박이들은 아무도 집 근처에 벚나무를 심지 않는다며 초를 쳤다. 선배 2의 귀농 계획은 시작부터 불안해 보였다.
선배 3은 착하게 살지 말라고 했다. 어려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효자로, 학생 때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으로, 입사해서는 회장님 말씀 잘 듣는 모범 사원으로 평생을 살았단다. 그래서 주변 사람 모두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한단다. (나 역시 선배 3을 흠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퇴직하려고 보니 굳이 착하게 살 필요가 있었나 싶더란다. 그냥 내가 편한 대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더라면 조금은 덜 후회스러울 것 같단다.
선배 3의 유언은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아마도 선배 3과 나를 동일시하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