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상당 부분은 타인의 과업과 나의 과업을 분리하지 못함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타인이라 함은 나를 제외한 모두를 말한다. 자녀의 성취를 부모 자신의 성취로 동일시할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비극을 보여준 '스카이 캐슬'을 보며, 자녀조차 나와 과업이 분리되어야 할 타자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가족이 그러하니 말 그대로 타인은 더더욱 과업의 분리를 분명하게 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누가 "우리가 남이가?"라고 묻는다면, 속으로라도 단호하게 '우리는 남이다!'라고 대답하자. 물론 술자리에선 예외다. 술자리에서 만큼은 피만 나누지 않았을 뿐 형제나 다름없는, 아니 명절 때만 보는 형제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친밀하여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가 된다.
최근에 퇴직한 선배 2는 주변의 만류에도 기어코 귀농을 했다. 입버릇처럼 철저한 계획을 강조했던 선배는 차박이 유행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 이불 한 채를 트렁크에 꾸겨 넣더니 갑자기 전국일주를 떠났다. 그리고 아무런 계획 없이 전국을 유랑하다 우연이 발견한 산골마을로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 이렇듯 우리 인생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물길의 여기저기에서 언제든 휴양을 즐기고, 그 근방 화개장터에서 장을 봐서 귀가할 수 있는 기가 막힌 입지에 흡족해했다. 한 후배의 조언을 새겨들은 선배 2는 꿈꾸던 벚꽃나무 대신 파릇파릇한 잔디를 깔았다.
새침한 말투의 서울 촌놈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골 어르신들은 피 덩이 같은 선배에게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생일 케이크에 나이에 맞게 초를 꽂았다가는 쑥대밭이 되어버릴 만큼 나이가 많은 선배지만, 산 좋고 물 좋은 산골마을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에 불과했다.
어르신들은 돌아가며 각자 생각나는 대로 이런저런 조언(혹은 참견)을 했고, 그중 공통된 건 '그놈의 잔디를 싹 갈아엎어라'와 이와 세트인 '세멘으로 발라라'는 조언이었단다. 벚꽃에 벌레가 꼬인대서 그 대신 선택한 잔디에서 모기며 날파리가 그렇게 번식을 한단다. 그러고 보니 동네 어르신들의 집 마당은 하나같이 시멘트로 덮여있었고, 시멘트로 덮인 앞마당에는 공동 구매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개밥그릇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단다. 그리고 과거 카사노바 누렁이가 온 동네를 훑고 지나간 듯 생김새는 물론이고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까지 똑같은 누렁이들이 집집마다 어슬렁 거리고 있었단다.
새로운 일은 없고 시간은 흘러넘치는 동네의 특성상 아주 작은 이야기도 동네를 세 바퀴쯤은 돌아야 사라지는데, 그중 정치 이야기는 점점 기세를 더해가는 토네이도처럼 동네를 열 바퀴고 스무 바퀴고 계속 돈단다. 열 바퀴 스무 바퀴를 도는 동안 서로의 논리를 흡수한 어르신들은 특정 정당에 소속된 특정 정치인에 대해 똑같은 논리로 욕을 하고, 또 다른 정당에 대해서는 어디서 합숙훈련이라도 하고 오신 듯 똑같은 어조까지 더해 하나 된 목소리로 비호하고 찬양한단다. 귀농한 마을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선배이기에 개인적 감정이 실렸을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고, 따라서 선배의 말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겠으나, 마음고생이 심한 것만큼은 너무나 분명해 보였다.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새내기처럼 마음이 여려진 선배는 모든 것이 낯설고 작은 헛기침에도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상태이니 나-중에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다.
만약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선배가 마음의 경계를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면 제안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중이 싫다고 절이 떠날 수는 없으니, 중이 절을 떠나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고, 두 번째는 성실하게 어르신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복제해서 어엿한 일원으로 거듭나는 방법이다. 산 좋고 물이 좋은데 화개장터라는 고급 상권마저 누릴 수 있는 기막힌 입지에 흡족해했던 선배 2이니 두 번째 방법을 적극 추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