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는 아주 조그만 섬인데,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해변의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은(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과장을 쏙 빼면 그게 또 무슨 재미인가..) 호텔이 빼곡히 들어 차있다. 그리고 그 호텔의 입지와 규모, 부대시설 등에 따라 숙박료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만 원짜리도 있고 심지어 그 이하도 있는 반면 수십만 수백만원인 곳도 있다. 신혼여행이라면 당연히 5성급 고급 호텔에 머물겠지만, 스탑오버로 하루 이틀 찍고 가는 경우가 잦았던 나는 주로 20달러 이하의 호텔을 찾았다.
코로나로 인해 밖에 나돌아 다니지를 못하니 답답한 마음에 자유롭게 여행하던 그때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마치 군대 생활관에 모여 휴가 나가면 들를 단골 맛집들을 경쟁적으로 떠벌리듯,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을 꺼내보기도 하고 또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시청하기도 하며 아쉬움을 달래는 날들이 쌓여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발리를 자주 갔어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딱 한 장면이란 거다. 20달러를 넘지 않는 호텔 수영장에서 혼자 둥둥 떠다녔던 그 날. 값싼 호텔이니 수영장도 손바닥만 했다.(물론 과장이다..) 수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구경할만한 누군가 혹은 이야기 나눌 누군가가 있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혼자 둥둥 떠다녔을 뿐이다. 어찌 저렇게 하늘이 파랗나 생각하다, 구름이 참 몽글몽글 하구나 생각하다, 바람이 수면을 간지럽히는 모양을 지켜보다, 나랑 같이 떠다니는 잎사귀들을 지켜보다, 이 잎사귀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다, 배가 고파져서 배짱이 놀이를 끝냈다. 그게 다다. 좋긴 좋았다. 하지만 그게 두고두고 회상할 만큼 대단한 경험이었는지는 무척 의문이다.
여기서 문제, 다음 중 사실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1. 발리를 추억할 때 고급 호텔이 아닌 초저렴 호텔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난 태생적으로 서민적인 인간이다.
2. 잊지 못할 순간이야! 했던 순간들이 잊히거나 희미해지고 딱히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던 순간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으니, 어떤 순간이 추억으로 남을지 예측할 수 없다.
3. 연가를 탈탈 털고 비싼 돈을 들여 떠나는 여행은 기대치가 높아 좀처럼 만족하기 어려운데, 스탑오버로 발리를 방문한 것은 덤으로 얻은 여행이라 기대치가 낮아서 쉽게 만족할 수 있었다.
4.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춤추며 놀던 때가 아니라 나 혼자 둥둥 수영장에서 떠다녔던 그때가 그리운 것을 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나 보다.
5. 서핑을 추억할 때에도 보드를 타는 순간이 아니라 적당한 파도를 기다리며 둥둥 떠다니던 순간을 그리워한다. 그러니 아마도 나라는 인간이 물에 둥둥 떠다니기를 좋아하는 보노보노 같은 인간인가 보다.
정답) 나도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