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몽매한 자

by 바보

'집값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자. 우리나라는 너무나 오랜 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브렉시트가 촉발한 세계적 경제 위기가 지금껏 금리를 붙들어 매고 있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조만간 오른다. 오르기 시작하면 대출금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물량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산업이 낮은 생산가를 무기로 한 중국에 쫓기고 있고, 첨단 기술 영역으로 넘어가려 하니 그 영역은 이미 독일 일본 등이 차지하고 있어 사면초가의 형세다. 이미 시장 위축은 시작되었고, 저금리와 부채로 한국 경제가 겨우 유지되고 있다 하겠다. 그러니 단기적으로는 투기심리와 현금 유동성의 영향으로 집값이 오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와 흐름을 달리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집값의 하락은 피할 수 없다. 국가 부동산 정책이 다주택자들의 주택 처분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실현되지 않음은 퇴직 후 생명줄로 부동산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인데, 거센 바람은 버틸지라도 각종 세금이 오르며 동시에 금리가 오른다면 집값의 하락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버티자. 3억이 올랐네, 5억이 올랐네 하는 소리에 흔들리지 말자. 그 가격에 팔고 나오지 못한다면 호가는 호가일 뿐이다. 잘못된 판단의 결과는 남은 여생을 빈곤에 빠뜨린다!'


라고 일기에 적어놨더랬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덜컥 집을 사버렸다. 집을 사고 나서는 집 값이 올라야 할 이유만 귀에 들리더라. 혹시 다른 동네는 떨어질지 몰라도, 내가 산 아파트만은 계속 오를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기더라. 우리 아파트에 호재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입주자 커뮤니티에서 수시로 알려주니 감히 팔고 나가야겠다는 불손한 생각이 자라날 틈이 없다. 집이 없을 땐 집값이 떨어져야 할 이유만 보이고, 집을 사고 나서는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만 보인다.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던 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싶다. 나는 그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무지몽매한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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