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참으로 독특하다. 범접할 수 없는 상상력이 가장 큰 특징이기에 당연히 많은 기자들이 상상력의 비결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그는 '다락방'으로 그 비결을 설명한 바 있다. 모든 사람은 어린 시절 상상의 세계를 펼치지만 어른이 되면서 그것들을 다락방에 넣어두고 잊어버리는데, 자신은 그 다락방 문을 열고 살펴본다는 것이다.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상상력이란 결국 기억이며, 어린 시절에 쌓아둔 상상들을 끌어올려 작품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 부산은 남다른 매력이 있는 도시이다. 한두 번 가보면 도시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히는 신도시와는 다르게 역사의 흐름과 인간의 욕망에 따라 자연 발생한 마을들이 얼기설기 얽혀있다. 산 중턱에도 집이 있고, 바닷가 절벽에도 집이 있지만 고립되는 마을 하나 없이 산복도로와 좁은 골목으로 어떻게든 이어지며 온 산을 휘감고, 온 바다를 감싼다.
그뿐인가?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나 이산가족들의 만남의 장소 등 한국전쟁의 흔적과 동양척식 주식회사나 일본식 가옥 등 일제시대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한국전쟁 때 깡통시장에서 깡통(미군들의 보급품)을 팔면서 장사를 시작하신 큰아버지는 아직도 그곳에서 장사를 이어가시고 계시니 현대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라 해도 큰 과장은 아닐 듯싶다.
이런 매력 넘치는 도시에서 자라나서인지 나에게도 자그마한 '다락방'이 있다. 특히 내가 뛰어놀던 공간을 거닐다 보면 그 다락방에 넣어두었던 상상들이 하나 둘 튀어나온다. 집 앞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엔 버스가 농구공을 밟으면 어떻게 될는지 상상했던 것이 떠오르고, '개조심' 경고장이 붙어있는 집을 지날 때엔 황소만큼 큰 개가 문 뒤에 숨어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나의 자아(특히 무의식의 세계)를 완성했다 싶은 게, 고향을 떠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꿈의 배경은 항상 부산이다. 게다가 칼라 꿈이고, 그 내용도 항상 기상천외하다. 이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 다락방에 잔뜩 쌓아둔 상상 덕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