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
*이 글에서 2009년 이전에 학창 시절을 보내어 혁신학교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 즉 90년대생 이전 세대를 편의상 기성세대라 칭하겠다.
20년 정도 시간을 거슬러 2000년대 초반의 기억을 되내어보자. 당시 기성세대는 기존 교육에 대한 염증과 불신이 만연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음 세대는, 아니 내 자식만큼은 좀 더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여 대안학교가 생겨났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짙은 유별난 사람들이라 치부하기에는 기성세대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진 (이제와 생각해보면) 비상식적이고 괴상하기까지 한 일들을 경험했다. 게다가 마음이 병든 아이들이 일으키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9시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가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따로 검정고시를 준비해야 하는 대안학교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건이 되는 소수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안학교가 아닌, 공교육에서 아이들이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꿈꾸게 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2009년에 문을 연 최초의 혁신학교인 보평초등학교는 그 꿈의 결실이다. 그 당시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소개한다며 특집 다큐멘터리로 편성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고, 그 행보가 연일 뉴스로 보도될 만큼 열기는 꽤나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소개된 내용에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3무 운동이라는, 요즘 말로 하면 교육공동체의 약속도 있었다. 교사는 체벌하지 않고,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학생은 흉기나 음란물을 학교에 가지고 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학부모는 수업 시간에 교실에 출입하거나 음료 다과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난 10여 년간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체벌하지 않겠다, 촌지 받지 않겠다는 약속이 우스워보일 정도로 학교는 변했다. 대걸레 자루, 당구 큐대, 장구채, 칠판용 삼각자, 출석부 모서리 등 그야말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체벌하던 악습을 타파하고자 교육부가 나서서 체벌 가이드라인을 만들던 때가 70년대, 80년대가 아닌 2000년대이다. 학생들의 인권을 옹호한다며 초등학생은 지름 1cm 내외, 길이 50cm 이하로, 중고등학교의 경우 지름 1.5cm 내외, 길이 60 cm 이하로 매의 기준을 정했었다. 횟수는 초등의 경우 1차례 5회 이내, 중 고생의 경우 10회 이내로 제한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의견은 (놀랍게도) 맞을 때 다치지 않도록 안정된 자세를 취하도록 할 것, 학생들에게 체벌의 교육적 의미를 알려줄 것 등이었다. 그러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해서 체벌을 금지하게 된 것이 2012년이다. 100년 전이 아니라 불과 10년 전이다.
체벌만 사라졌나? 0교시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야간 강제학습)도 사라졌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사라졌다. 단편적 지식을 묻는 평가가 사라지고, 논술형 평가, 토론, 실기, 포트폴리오 등 고차원적인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교사별 상시평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무상급식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방과 후 빈 교실에서 코딩, 우쿨렐레, 축구, 댄스 등을 배우는 방과 후 학교도 생겼다. 뿐만 아니라 늦게 퇴근하는 부모님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기다리는 종일 돌봄 교실도 생겼다. 중학교에는 자율학기제라 하여 1학년 1년 동안 시험이 없고,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과 체육 프로그램, 개별 선호도에 따른 동아리 활동, 각종 진로 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제도가 전국적으로 자리 잡았다.
학교 안 가용 공간과 가용 시간을 가득 채운 뒤에는 학교 밖 꿈의 학교가 생겼다. 위탁교육 기관에서 승마 체험, 공방 체험, 오케스트라 활동 등 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뿐인가? 몽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이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과 자기 주도성을 펼치며 활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이 권역별로 만들어졌고,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을 위해 꿈의 대학이라는 이름의 진로 체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들은 학교 교육이 사회로 연결되도록 하기 위한, 초, 중, 고, 대학, 직업인으로 이어지는 우리 삶 전체에서 교육의 효과가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그리고 학교 안과 밖에서 물 샐 틈 없이 행복하게 자라나도록 교육하고자 하는 다각도의 노력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노력으로 기성세대가 경험한 학교와 90년대생 이후 세대가 경험한,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교육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다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며 시작한 혁신학교 본연의 목표를 성취했느냐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여전히 이상적인 학교의 모습이라 하기에는 마뜩잖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폭력의 양상은 더 사나워지고 교실 붕괴의 조짐이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과 우려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터져 나오고 있으니 이상적인 학교는커녕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엉망인 문제 덩어리로 보일 정도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발간한 교육 정책 자료를 살펴보면 세상 좋은 말은 모두 모아놓은 듯 아름답기까지 한 교육 목표 아래, 결연하고 섬세하며 물 샐 틈 없이 견고한,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서의 전형이다. 게다가 각 지역 교육지원청에서 매일, 매주, 매월, 매해 만들어내고 있는 엄청난 수의 기획안과 공문을 보고, 또 집행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보면 계획만 완벽한 게 아니라 실현을 위한 노력도 대단함을 그 누구라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선 무너진 학교 내 권력의 균형과 고차원적 사고에 편향된 평가 방식, 그리고 말단까지 닿지 못함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교육 정책에서부터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