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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Jun 07. 2022

무너진 교실 내 권력의 균형

 그 어느 때보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이들의 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불과 십수 년 전에 대걸레 자루, 당구 큐대, 장구채, 출석부 모서리 등 그야말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체벌하던 교육현장에 대법원이 해준 말이 '다치지 않도록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하라' 였음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바람직한 변화이다. 반드시 필요한 변화이다. 그래서 참 반갑다.


    문제는 학생들의 인권이 놀라운 속도로 자라나는 동안 교사는 개혁의 대상, 타파해야 할 사회의 암, 공공의 적이 되며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은 아직도 촌지 받는 놈 없나 가자미 눈을 뜨고 감시하는 날이 되어버릴 만큼 교사의 설 자리는 쪼그라들었다. 교사를 사명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억울하게 들릴지 모르나, 교사도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인데 따로 스승의 날을 만들어서 축하해줄 이유가 도대체 뭐냐 묻는 이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스승의 날은 더 이상 우리 국민정서와 맞지 않는 날이 되었으니 없어져도 좋겠다 싶다.


 학교의 중심은 학생이라는 말은 진리이다. 아이들이 미래이고 희망이다. 그렇지만 교사가 교실에서 해야 할 수많은 역할들을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의 권력은 남겨줘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엄마 아빠가 되어 자상하게 돌봐주는 역할도, 예의를 지키는 바른 아이로 자라도록 훈계하는 역할도 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아플 때는 간호사가 되고, 위급상황에는 119 대원이 되고, 다툼이 발생하면 공정한 재판관이 되고, 사안에 따라서는 변호사가 되기도 하며, 상담가가 되기도 해야 한다. 학교 폭력 앞에서는 든든한 경찰이 되어 지켜줘야 한다. 이것이 사회가 교사에게 바라는 역할이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은, 허구한 날 주변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정당한 교육을 할 수 있는 힘은 남겨둬야 한다는 말이다. 체벌을 다시 허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교실 뒤에 세워두기만 해도 학생 인권 침해가 되고, 없는 집이 없다는 생각하는 의자도 학교에서는 인권 침해가 된다. 목소리를 함부로 높여서도 안되고, 체벌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친구들 앞에서 훈계를 해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따로 불러내면 수업권 침해가 되니 안되고, 방과 후에 남겨서 상담을 하려면 학부모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 가능하다. 상담하다 학생에게 맞아도, 욕을 들어도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차분한 말투로 진정시키는 일뿐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하면 교사직이 위협받는다. 물론 교육적 소신으로 학생들을 훈계하는 교사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하지만 소신을 지키려다 고초를 겪는 교사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이를 보는 동료 교사들은 한차례 더 위축된다.


학생들을 지키는 장치가 필요해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10년이 흘렀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교사가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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