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은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스스로 마감하는 가운데, 교장들의 직업 만족도가 최상위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입니다. 한 배를 탄 교육 가족일진대, 어찌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권력의 상층부로는 권리와 권한이 집중되고 하층부로는 업무와 책임이 집중되어 온 교육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핵심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1. 교사들이 학생을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교장 선생님의 직무로 명시해 주십시오. 악성 문제 학생과 악성 민원 학부모는 극히 소수입니다. 그런데 그 빈도가 30명 중 1명이라면 교사들은 매해 고통받는 것일 테고, 100명 중 1명이라 해도 3년에 1년 정도는 고통받는 해를 보내게 된다는 말일테지요. 백보양보해 1000명 중 1명이라 해도 교사들은 누구나 교직인생 내에 한 번쯤 악성 문제학생, 악성 민원 학부모에게 고통받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생들의 문제 행동과 학생들의 악성 민원은 매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간 여러 교사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수많은 교사들이 내몰리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법이 교사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미래에 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법이 닿지 않는 틈새를 메우는 제도적 보완은 필요할 것입니다. 이 역할을 교장선생님의 직무로 명시해 주십시오. 악성 문제 학생과 악성 민원 학부모로부터 교사들을 보호하고 가르치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교장 선생님의 직무로 명시해 주십시오.
2. 민주적인 학교를 보장하는 학교 조직 문화를 형성하도록 독려하는 제도를 추진해 주십시오. 구호만 있고 행동은 없는 제도가 셀 수 없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실효성 있는 제도를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혁신적이고 구체적이며 구조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의 승진제도는 제왕적인 교장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교장선생님은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 선생님의 승진 가부를 손에 움켜쥔 채 권력의 꼭대기에 서고, 그 아래에 차기 교무부장이 되기를 희망하는 연구부장을 비롯한 부장교사들이, 또 그 아래에는 차기 부장교사가 되기를 꿈꾸는 교사와 승진을 거부하거나 포기한 교사들이 층을 이룬 파편적이고 수직적인 학교가 참 많습니다. 이러한 파편적이고 수직적인 학교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의사결정 권한이 독점된 조직은 건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조직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교장을 선출보직제로 하자는 대안 제시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기존 교장 자격을 받은 이들의 기득권으로 묵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기득권이 민주적인 학교로의 전환에 있어 발목을 잡는 경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점수의 승진가산점 반영 건입니다. 초임교사 시절에 받는 일개 연수 점수가 교직인생 후반의 승진 가부에 크리티컬 한 요소라는 사실에 수십 년간 비판이 이어져 왔음에도 이 점수를 잘 받은 사람들의 기득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P/F 제도로 바꾸었음에도 여전히 혁식을 미루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기득권을 다 챙기다, 민주적인 학교라는 진정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업을 그르치게 될까 염려됩니다.
3. 학생을 가르치는 고귀한 일이 학교의 중심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고귀한 일을 하는 교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교장 자격증이란 제도가 최대한 어릴 때 교장자격증을 따서 남은 삶을 안락한 교장실에서 편안하게 보내고자 승진점수 모으는 일이 최우선 순위인 사람들을 대량 양산했습니다. 더 빨리 승진하기 위한 패스트 트랙으로 장학사 제도가 왜곡된 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교장 자격증 따기에 성공한 사람이 많아지니 교장을 두 번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제도화했지요. 그러자 공모제 교장이라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나 교장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교장자격증 제도로 보장되는 막강한 권한 때문입니다.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쥐기 위한 경쟁이 계속되는 동안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그리고 경쟁에 뛰어들지 않거나, 뛰어들었으나 포기한 교사들은 패배자가 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그 어떤 교사도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