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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Aug 18. 2024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심심풀이 땅콩

 초딩시절의 나는 홀로 집을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은 일터에서 밤이 되어야 들어오셨고, 학교가 끝나면 끼니를 챙겨 먹는 일 외엔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심플한 삶을 살았다. 공부는 한 톨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별 재미도 없는 것들에 꽂혀서 한참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50년 후의 내 모습'이라는 신해철 노래와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제목의 책이 그중 하나였다. 말하자면 더럽게 심심한 초등학생에게 나름의 곱씹는 재미를 주는 심심풀이 땅콩.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일들

50년 후의 내 모습

주름진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칼

아마 피할 순 없겠지

강철과 벽돌의

차가운 도시 속에

구부정한 내 뒷모습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더 적을 그때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월에 떠다니고 있을까


 노래를 들으며 세월에 떠다니고 있을 내 모습, 구부정한 내 뒷모습, 주름진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칼을 그려봤다. 두려웠다. 한참 남아있는 그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새 코앞에 와있으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 주름이 꽤나 앉았고, 등은 구부정해졌으며, 머리칼도 하얗게 세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은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 뭔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간지럽히던 책으로 기억에 남았다. 초등학생시절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 책을 오늘 다시 살펴보며, 초등학생시절의 나는 얼마만큼 이해하며 읽었을까 참으로 궁금해졌다. 더불어 지금의 나는 100% 이해하고 있는가 의문스러웠다. 


 '그날 혼잣말하는 널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저위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는 희망 속에서 이 생활을 참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널 만난 후로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때 비로소  이러한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깨달았어. 그러나 다정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난 내가 이 삶을 지긋지긋해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어. 난 이제 너와 함께 기어 다니며 풀을 갉아먹는다든지 하는 일을 하고 싶어.' 



당신은 의미를 이해하는가? 그렇다면 빨간 약을 먹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정말 그렇다면 당신 인생을 책임질 용기가 있는가?


모든 답변이 YES라면,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치열하게 투쟁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당신의 목숨이 다하는 그때에 이르러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부디 그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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