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면 잠자리에 쉬이 들지 못한다. 어렵게 잠에 들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떠져서 새벽의 적막함 속에 유난히 커져버린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를 한없이 듣게 된다.
명확한 스트레스의 원인을 아는 날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만, 오늘처럼 그마저도 불분명한 날에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하루 중 나를 괴롭힌 일이야 차고 넘치지만 어제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콕 집어 '네가 스트레스의 원인이구나'라고 몰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쩌면 그저 바이오리듬이 곤두박질치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인스타나 페북에 올라오는 사진들이 과시적인 성격이 강해서 박탈감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하는데, 내가 쓰는 글도 또 다른 형태의 과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만사를 통달하고 초월한 사람처럼 토독토독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면 스멀스멀 자기애가 차오른다. 그것에 맛들리면 나 자신도 속게 된다.
완벽하게 나를 속인다면 나에 취해 살겠지만, 글로 드러난 나와 현실에서 허우적대는 나의 간극을 가장 잘 아는 이가 다름 아닌 나라서 토독토독 자판질로 쌓아 올린 자기애가 오히려 독이 된다.
직장에서의 나라는 인간은 내가 쓰는 글과 쏙 빼닮았다. 무능한 모습은 결코 드러내지 않고 모든 일처리에 능숙한 듯 행세한다. 이빨 빠진 호랑이임을 들키면 직장이란 생태에서 살아남지 못하기에 최선을 다해 과오를 숨기고, 이에 몇몇은 제대로 속아서 능력자라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하루하루가 막막하고 위태롭다는 것을.
이 간극을 무슨 수로 줄인단 말인가? 대나무밭에 가서 외쳐야 하나?
십수 년을 한 직장에서 일해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인간관계는 너무 어렵다. 주변을 돌아보고 챙겨야 하는 나이인 것 같은데 여전히 내가 주인공이고 싶다. 자꾸만 나를 포장하고 싶어서 솔직한 나를 드러내기 어렵다. 하도 포장만 하며 살다 보니 진짜가 뭔지 나조차 헷갈린다. 잘 살고 싶은데, 잘 사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나답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 말하던데, 나다운 게 뭔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불면증의 원인도 모르겠고 이 글을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쉽게 말해 나는 바보다.
뭐지? 이 묘한 쾌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