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빠져도 조기축구회는 빠지지 않는다는 박 부장님에게 물었다.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이러다가 프로 전향하시는 거 아니세요?"
'그게 그렇게 재밌으세요?'라는 질문을 돌려 말했다.
박 부장님은 그저 건강을 위함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발톱이 보라색으로 멍들어도 끊지 못했으니 거짓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열정이 대단하십니다'라 말한 부분은 진심이었다. 그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니, 또 회사 일이 산더미여도 취미생활을 위한 에너지가 남아 있다니 진심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그나마 열정적인 부분은 회사 일이다. 사장님이 이 글을 혹시라도 읽게 된다면 무척 기뻐하시겠지만, Jade라는 얼토당토않은 가명을 쓰고 있는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참고로 Jade는 브런치에 가입하던 날 묵었던 (아무리 봐도 모텔 같았던) 호텔 이름을 빌려 쓴 거다. 나와의 관련성이 전혀 없는 이름이 안전하다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 입사하던 날, 한 동네 사시던 이모부님이 집으로 찾아오셔서 직장생활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며 앉아보라 하셨다.
"니가 사장이면 100만 원 치 일하고 100만 원을 몽땅 가져가는 직원을 좋아라 하겠나? 150만 원, 200만 원만큼 일하면 안 잘리고 계속 다니는 거고, 300만 원 400만 원 치 일하면 승진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도 기억할 만큼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이모부는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는지, 그게 아니라면 사장님이 이모부님의 충성심을 몰라봤던 건지, 아직은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밀려나셨다. 이모부님의 움츠러든 어깨를 보며(장례식장에서는 누구나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하듯) 회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회사에 뼈를 묻으려는 걸 사장님이 보시면 남의 사유지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호통 치실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뼈를 묻을게 아니라면 내 삶을 찾아보자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라는 광고를 발견한 날 곧바로 글 세편을 쓰고 작가 신청을 했다. 나만의 기쁨을 위한 사치스러운 행위. 즉 취미생활이란 걸 시작한 거다. 글쓰기를 취미로 삼은건 뭔가 고상한 느낌이어서 꽤나 괜찮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열편을 모아야 브런치북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 응모할 수 있단다. 그래서 하루에 한편씩 열흘간 썼다. 맨날 쓰는 퍽퍽한 보고서와는 다르게 글을 쓰는 재미가 쫀득했다. [스리랑카를 그리워하는 회사원 김 씨]를 완성하고 처음부터 주욱 읽는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그런데 다들 자기가 쓴 글이 제일 재미있다더라.
열편을 쓰고 그만두려 했었다. 그런데 쫀득했던 글쓰기의 맛이 자꾸 생각나서 시에스타파 동료들에게 배신을 선언했다. 처음엔 점심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다가 퇴근 후에도 쓰고 가끔은 새벽에도 썼다. 사실 근무시간에 일하는 척하면서 쓰기도 했다.(이 글을 사장님이 보시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밤낮없이 쓰다보니 속도가 붙어 순식간에 [퇴근 이 얼마나 근사한 단어인가?]와 [아유보완 스리랑카]가 완결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11월 17일, 응모 마감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욕심이 생겼다. 혹시 내가 긁지 않은 복권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 사실 나는 좋은 꿈을 꾸면 로또 2000원어치를 산다. 1000원이 아닌 2000원인 이유는, 어느 날 누군가 던진 실없는 농담 때문이었다.
"로또 당첨 확률을 2배로 높이는 대단히 과학적인 방법이 밝혀졌다는 소식 들었어?"
"???"
"로또 2장을 사는 거래"
분명 농담인데 웃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이라 표현한 부분이 거슬렸다. '수학적인 방법이겠지'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설득당해버렸다. 너무나 이치에 맞는 말이다 싶어 탄복했다.
그렇다. 브런치북을 하나 더 발행하면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거다! 11월 17일이 왜 하필 일요일이었는지, 그간 점심시간마다 한편씩 쓴 걸 생각하면 하루 만에 10편도 불가능하지 않다 싶어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사실 국민학교를 다녔지만..) 방학숙제였던 한 달치 일기도 개학 하루 전날 후다닥 써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나다! 못할 게 없다!
고백하건대 [아들아, 나때는 말이다]는 그렇게 벼락에 콩을 볶듯 탄생했다.
일주일쯤 지나 다시 읽어보는데 나의 벌거벗은 사진을 보는 듯했다. (당첨 확률이 낮아짐을 감수할 만큼) 부끄러워서 지우려 했다. 그런데 한번 발행한 브런치북은 삭제가 안되는지(아니면 어디엔가 존재하는 삭제 버튼을 내가 찾지 못하고 헤매는 건지)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브런치북을 발행할 때 0.1초 만에 넘겨버린 주의사항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 걸까?
삭제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 대신 반성문으로 "토독토독 자판질로 쌓아 올린 자기애"를 썼다. 그리고 이틀을 생각한 끝에 이제 그만 쓰리라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