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by 바보

절필을 선언하고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기만적인 글, 과시적인 글, 정성이 담기지 않은 수준 미달의 글을 읽게 될 독자의 마음을 생각하니 송구스러워 더 이상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 열흘간 글이 너무 쓰고 싶었다. 응? 내가 글쓰기를 이렇게나 좋아했었나?

급기야 다시 글을 쓰기 위한 핑계를 문득문득 찾기 시작했다.


1.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하등 없다. 돈 받고 일하는 경우라면 프로의식을 가져야겠지만 취미생활일 뿐인데 못쓰면 어떠한가.

2. 독자들이 글을 읽다 영양가 없는 글이라 판단하여 스킵하든 욕을 하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독자에겐 내키는 대로 읽고 마음 가는 대로 비평할 자유가, 작가에겐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쓸 자유가 있다. 영양가 없는 글이니 그만 쓰라고 하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3. 설령 누군가 엉터리 글을 쓰려거든 쓰지 말라고 말해도 내가 그 말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4. 새날이 밝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그 이야기들이 만인에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은 아닐지라도 30년 뒤의 내가 읽기에는 그 어떤 베스트셀러보다 재미있는 글이다. 마흔을 맞이하는 나라는 인간의 모든 정신세계가 녹아든 사골 곰국 같은 글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5. 내 안의 샘솟는 이야기는 흘려보내야 한다. 고인물은 썩는다. 고여있는 글은 그릇된 자기 확신과 왜곡되고 편향된 가치관에 물들기 십상이다.

6. 절필 선언을 했다지만 독자가 천 명, 만 명 되는 인기 작가도 아니고,

7.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인도 아니고,

8.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유를 여덟 개나 찾고 앉아있나,

9. 이전 글을 슬쩍 지운다고 누가 아는 것도 아니고,

10. 굳이 그런 치사한 짓을 하지 않더라도 누가 이전 글을 찾아보는 것도 아니고,


그래, 10개 정도 이유를 찾았으면 충분하다! 싶었지만 겸연쩍은 마음을 지울 수 없어 망설이던 차에 한 독자로부터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받았다.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 더 써보라는 격려의 편지를 보내준 고마운 독자님 덕분에 쑥스러움을 털어내고 다시 써보려 한다. 그 편지가 없었더라면 다시 글을 써야 할 이유만 백개쯤 찾다가 제풀에 꺾여 나가떨어졌으리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취미생활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