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사람은 나라는 사람을 모른다.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의 총성이 트리거에 불과하듯 변화의 큰 물결은 그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때 마침 그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나 물고를 텄을 뿐이리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카츄가 라이츄가 되는 진화가 아니라 피카츄가 난데없이 꼬북이가 되는 말이 안 되는 변화에 촉매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분의 이름을 모르기에 편의를 위해 촉매 씨라 칭하겠다.
십 년 전 스리랑카 캔디에서 외국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변화의 큰 물결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나고자라며 만국 공통 만고불변의 상식이라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단지 한반도에서만 통용되는 우리들만의 상식임을 깨닫게 해 준 많은 캔디언들을 만났지만 촉매 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표본이었다.
출근길 길목에 위치한 탁구장을 운영하는 촉매 씨는 가게문 앞 차양이 만든 한 조각 그늘 아래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항상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거구인 촉매 씨의 몸무게를 지탱하기 버거운 듯 플라스틱 의자 다리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롭게 휘어져 있었다. 상의는 입지 않았고 긴 천으로 허리를 동여맨 일종의 치마를 입고 있었다. 굳은살로 뒤덮인듯한 투박한 발은 맨발로 숲을 뛰어다니던 원시인의 발이 그러했으리라 짐작케 했다. 간판은커녕 그곳이 탁구장임을 보여주는 그 어떤 표시도 없었으니 강습시간표, 이용료 안내, 연간회원권 홍보 등의 어떤 형태의 안내가 없음은 당연했다. 그 길을 매일 오가면서도 탁구장인지 한참을 모르다가 탁구채를 손에 든 손님이 의자에 앉아있는 촉매 씨에게 이용료 50루피를 건네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알게 됐다. 문 틈으로 보인 탁구장에는 육안으로도 수평이 맞지 않음이 확실하게 보이는 탁구대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다.
촉매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의자 다리가 부러질 듯 휘어져 있어도 더 편한 의자를 구입하지도 않았고, 더워서 웃통은 까고 있을지언정 선풍기를 가져다 놓지도 않았다. 탁구장에 손님이 들어가도 본체 만 체였고 탁구채와 탁구공을 내어주거나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등의 서비스는 당연히 없었다. 가게는 손님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올까 의문일 정도로 구석진 곳에 위치했음에도 홍보를 위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휘황찬란한 LED간판은 아닐지라도 매직으로 찍찍 갈겨쓴 간판 정도는 있었을게다. 손님이 집에 가며 이용료를 지불할 때 잔돈을 내어주기 위한 돈통도 없었다. 그러니 손님들은 잔돈을 들고 오거나 근처 마트에서 잔돈을 바꿔서 지불하는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서비스도 없는 탁구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무척 덥지만 탁구공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닫아뒀던 문이 열리면 사우나를 끝내고 나오는 듯 땀범벅인 한 무리의 사람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촉매 씨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도를 닦는 현자처럼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도장 10개를 받으면 1번 서비스 따위의 영업전략을 구상하는 등 세속적인 생각은 아닐 게다. 세속적인 사고를 1이라도 한다면 간판 정도는 달았겠지. 의자에서 흘러내리는 모양새와 덤덤한 눈빛으로 추측하건대, 촉매 씨는 현자라기보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이 온전히 현재를 사는 초월인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지도 동영상을 보지도 책을 읽지도 않는다. 가끔 고개를 돌려 지나가는 개를 보거나 동네 꼬마들이 가게 옆 공터에서 축구하는 것을 지켜보는 정도의 유흥을 즐긴다. 아주 오래된 페트병 하나가 의자 옆에 세워져 있었다. 항상 물은 채워져 있었으니 가끔 일어나 물은 받아오는 듯했다. 손을 뻗어 목을 축이는 행위와 돈을 받는 행위가 내가 목격한 유일한 움직임이다.
혹시 일어설 수 없는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도 했었다. 가게 앞 나무로 걸어가서 치마 앞자락을 열고 소변을 보는 것을 보고 장애가 없음을 알았다. 벙어리가 아닐까도 의심했다. 그 집 앞을 매일같이 오가니 안면이 익었는지 눈이 마주치자 옅은 미소를 보여주며 "아유 보완" 인사를 하기에 벙어리가 아님도 알게 되었다. 사지가 멀쩡하고 정신도 멀쩡한 촉매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늘에 앉아 숨만 쉰다.
출퇴근길에 보이는 촉매 씨는 너무나 한결같아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며 촉매 씨에 대해 묵상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내 삶을 되돌아보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촉매 씨만큼은 아니지만 획기적으로 단순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마음에 공기가 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잡하게 하던 마음속 소음이 사라졌다.
누군가는 현재에 집중하면 전화번호부도 재미있다 했다. 꼬북이로 진화한 나는 제일 먼저 아침을 정성스레 차리고 꼭꼭 씹어 밥을 먹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도 티브이를 켜놓지도 않고 입안의 밥알을 느꼈다. 계속 씹으면 단맛이 난다. 정성을 다해 계란찜도 만들고 깍두기도 담갔다. 미각이 살아나 계란찜의 부드러운 촉감과 담백하며 짭짜름한 매력적인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덜 익은 깍두기의 알싸한 맛이 혀를 톡 쏘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밀어 넣던 그동안의 식사와는 달랐다. 밥에 남은 계란찜, 깍두기 국물, 참기름, 고추장을 넣어 슥슥 비벼 먹고 길을 나섰다. 공기의 향기가 느껴졌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그 향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새소리가 들렸다. 생각해보면 늘 새소리가 들렸지만 그동안은 지각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십 년이 흐른 오늘의 나는 다시 성실한 한국인이 되어 하루를 열심히 산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보고 환율과 인터넷 쇼핑몰의 오늘의 특가 상품을 확인한다. 필요했던 물건이 특가로 나오면 사려는 요량이지만 실상은 견물생심으로 필요 없는 물건을 잔뜩 주문한다. 눈은 다 떠지지도 않았고 핸드폰 불빛이 여전히 시리지만 날씨와 미세먼지를 확인하고 스팸만이 가득한 이메일을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변기에 앉아서도 뉴스를 확인하고 손흥민 경기 하이라이트를 본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손끝이 저리게 자판을 두드린다. 그러면서 틈틈이 주식 동향을 체크하고 때에 따라 매도 매수계약을 한다. 지금껏 한 번도 구입한 적 없는 부동산 동향을 체크하고, 로또가 당첨되지 않고서는 절대 살리 없는 새로 나온 외제차의 성능에 대한 리뷰를 찾아본다. 스스로가 도저히 이해 안 되지만 이런 쓸데없는 짓을 매일 한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밥을 먹으면서 영양가 없는 가십을 공유하고, 식사 이후 짧은 틈에 브런치를 켜서 끼적인다. 퇴근길에는 에어팟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듣는다. 대부분의 경우 상념이 많아 제대로 음악을 감상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버스에 앉아서 낭비하는 시간과 음원 사이트 이용료가 아까워서 억지로 음악을 켜서 귀를 혹사시킨다. 퇴근해서는 전자책 이용료가 아까워 책을 읽으며 티브이를 켜고 볼 것도 없는 VOD 목록을 구석구석 살피고, 오랜 고민 끝에 늘 보는 신서유기나 놀면 뭐해를 선택해서 켠다. 5분쯤 보다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아침에도 했고 회사에서도 했던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을 또 한다. 아..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