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기묘한 이야기>
중학생 때였나, 가족과 함께 찾은 영화관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여기 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부모님들은 자녀의 눈을 가리기 바빴다. 심지어는 아예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가족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이야기다.
아무리 영화가 그래도 소동이 일어날 정도인가? -싶겠지만,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를 기대하고 온 어린 아이들이 갑자기 피가 낭자하는 잔인한 묘사와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괴한 크리쳐를 목도했다고 생각해보라.
우리 가족 역시 이러한 소동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님께서는 나와 동생의 눈을 몇 번이나 가리셨고, 실제로 피가 낭자한 장면은 나 역시 차마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부모님의 손 틈새로 꾸역꾸역 챙겨 봤던 장면도 있다. 기괴한 괴물이 나오는 장면이다. 괴물이라고 해봐야 좀비나 외계생명체 같은 거만 상상해왔던 나에게 판의 미로 속 괴물은 뭐랄까-먹어본 적 없던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괴물의 이미지는 나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괴물'이라는 소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상상력의 소산 그 자체다. 영화 속 괴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마 상상조차 못 해봤을 정도로 기괴하고 흉측하게 묘사될수록, 그 괴물은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된다. 달리 말하면, 괴물은 상상의 영향력이 클수록 더욱 흉측하고 기괴해진다. 그러니까 어른에 비해 아이가 괴물을 더 무서워하고, 더 흥미로워 하는 것은 사실 어른에 비해 아이가 상상력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판의 미로>를 찍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상상력으로 버텨냈다. 나에게 상상은 도피가 아닌 진실과 관계 맺는 방식" 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상상은 그러니까 현실의 반대 아닌가? 그런데 진실과 관계를 맺는다니?
델 토로 감독의 말을 이해하려면, 현실과 진실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 진실은 언제나 현실과는 다르다. 되게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는 종종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란 대개 우리가 인지하는-그러니까 우리가 스스로 구축해 온-세계의 표상이다. 그렇기에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혹은 외면해온 것들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것들은 아니다. 현실은 아니지만 진실인 것들은 그렇게 태어난다. 그래서 상상은 진실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상상력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진실과 관계를 맺는-이러한 상상은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에서 자주 목격된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들 수 있다. 제목부터 괴물이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안다, 이건 괴물 영화가 아니고 사회 풍자 영화라는 것을. 포름 알데히드 같은 화학약품을 아무런 처리 없이 하수구에 흘려보낸다는 불편한 진실은 괴물이라는 상상과 결합된다. 한강에 출연한 괴물은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추악한 진실이다. 그러한 진실들로 현실이 무너지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영화 <괴물>은 그러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기묘한 이야기>는 앞서 말했던 괴물을 영리하게 활용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괴물>이나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와 유사한 성격을 띠기도 한다. 그 말은 그러니까-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괴물이 아니라는 말과도 같다. 이쯤되면 짐작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가족, 사랑, 유대 그런 것들이다. 그렇다. 이 뻔한 것들이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가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뻔한 것도 뻔하지 않게 표현하면 그것은 흥미로운 서사가 된다. <기묘한 이야기>의 주제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분명 괴물이다. 그것도 굉장히 정교하게 설계된 세계관 속의 독특하고도 기괴한, ‘잘 만들어진’ 괴물들.
때문에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이들인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이 곳의 괴물은 더퍼 형제의 상상물임과 동시에 영화 속 아이들의 상상물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든 밖에서든 어른들은 괴물이 있어요-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 그건 현실이 아니니까.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에게 괴물은 상상이면서 동시에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관점으로 괴물의 사실감을 느끼면서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괴물의 존재를 믿지 않고, 초능력은 더더욱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영화 속 어른들-대표적으로 호퍼-을 답답하게 느낀다.
하지만 영화 밖의 우리는 어떨까. 생각건대 우리는 대개 호퍼 같은 어른이다. 직접 보기 전에는, 괴물 따위는 현실이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얼마나 편협한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진실이 현실을 침범할 때는 이미 늦은 뒤다. 준비되지 않은 진실은 언제나 깊고 진한 흉을 남기니까.
결국 진실이 침범해 오기 전에, 현실의 벽을 상상을 통해 그리고 유대를 통해 허물 것을 <기묘한 이야기>는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분명 이 영화의 장르는 호러, 스릴러지만 <기묘한 이야기>는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 괴물에 쫓기는 급박한 장면에 경쾌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뮤지컬스러운 장면을 오버랩하는 부분만 보더라도 그렇다. 도피하고 싶은 잔혹한 상황에서의 유머는 마치 상상과도 같다. 도저히 웃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웃는 것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머를 통한 현실의 벽 허물기는 사실 대부분의 영화가 사랑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댄스배틀 씬을 꼽을 수 있다. 최악의 적을 눈 앞에 두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상상을 해보았다-고 끝내지 않고 스타로드는 진짜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를 통해서 현실을 뭉그러뜨렸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므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는 곧 상상인 셈이다. 그렇다면 굳이 심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묘한 이야기> 속의 모순적인 웃음 장면은 모두 상상을 통해 현실을 진실과 일치시켜 주인공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정말 기묘한 것은, 호킨스 마을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결국엔 서로를 이해하고 진실을 마주한다는 점이다. 시즌2를 지나 시즌3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괴물이라는 진실은 현실이 되었고, 그들은 어찌됐든 현실을 살아가야 하므로. 그래서 우습게도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다만 상상을 통해 성장한 아이들은 분명 기존의 어른들과 다르다. 그들은 이제 얼마든지 현실은 왜곡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진실은 꽤나 잔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묘한 것은, 괴물이 나타났기 때문에 어른들은 비로소 서로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으며, 진실된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거다. <기묘한 이야기>의 전말은 그래서 영화 속 아이들의 상상을 종결짓고 어른들이 살던 현실을 진실과 동일시 해 나아가기 시작하는, 평범하다고 느껴질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찾는데 있다.
당연한 현실은 없으며, 현실의 수면 아래에는 언제나 외면된 진실이 모로 누워있다. 그래서 조금만 현실에 기대려 하면 진실은 꿈틀대며 떠오른다. 우리는 사는 동안 끊임없이 현실을 상상해야 한다. 상상을 동원하여 진실을 목도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그러한 진실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상상을 종결하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현실을 시발하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때로 잔혹할 것이며, 때로는 괴물과 같은 흉측한 것을 동원하는 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만이 이뤄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와 같은 여정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만이 이른바 '영원한 안식(혹은 자유)'-더 이상 진실이 현실을 침범해 들어오지 않는-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 이야기했던 <판의 미로>로 돌아가보자. 마지막에 오필리아가 도달하게 되는 호박색 궁전은 상상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줄곧 나는 이것이 오필리아의 비극적 상상 혹은 망상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 보면 오필리아가 도달한 곳은 상상이 아닌, 진실된 현실 속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영화 후반부부터 오필리아의 상상은 <기묘한 이야기>에서처럼 더 이상 상상이 아니며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과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러다 종래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구축되기에 이른다. 상상(진실)과 현실의 일치. 영원한 안식에 오필리아는 접어든 것이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 역시 괴물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제 영화를 보기 전에도 이것이 괴물에 대한 영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주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주인공들이 상상을 발휘하는지와 어떠한 여정을 통해 상상과 현실을 일치시켜 나가는지일 것이다. 어쩌면 흉측하고도 기괴한 괴물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각광받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사는 현실이 상상으로부터 침범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외면된 진실들이 켜켜이 쌓여, 더 이상은 현실이라고 부르기도 흉측한 지옥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오해와 불신, 질투와 좌절이 시시각각 우리를 침범해 오는 때에 <기묘한 이야기>가 아주 약간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