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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snghwn Oct 20. 2018

기다려 달라는 말

영화 <스탠바이, 웬디>

아끼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건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스탠바이, 웬디>의 웬디가 그렇다. 웬디는 조카를 끔찍히 사랑하지만, 조카에게 다가갈 수 없다. 그건 웬디의 잘못이라기보단, 웬디가 어쩔 수 없이 지게 된 장애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웬디는 그 슬픔을 짊어져야만 했다.

웬디는 평상시에 내내 무표정하고, 어떻게 보면 쌀쌀맞기 까지한 소녀다. 그녀가 그렇게 인간미가 없을 만큼 스스로를 절제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그런 슬픔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웬디는 ‘어차피 난 이런 사람이니 달라질 건 없어’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난 이런 사람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 무엇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달라질 수 있어’ 식의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웬디는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사랑하는 조카를 안아보기 위해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시나리오 응모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를 직접 응모하러 가는 여정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단순히 행하는 어떤 것도, 다른 어떤 이에게는 단순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칫 별 대단해보이지 않는 사소한 일도, 어쩌면 세상 대단한 그 무엇이 되곤 하니 말이다.

‘스탠바이’라는 말은, 영화가 촬영되기 전 배우와 촬영진의 대기를 알리는 말이다. 일단 영화 촬영이 시작되면, 씬을 이어나가든 재촬영을 하든 해야한다. 하지만 스탠바이 싸인 없이 촬영되는 씬은 없다. 준비되지 않은 씬은 자칫 불협화음이 되곤 하니까.

웬디가 시나리오 공모에 나가는 것도,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도 웬디는 오랜 시간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 싸인이 떨어지고, 조명이 자신을 비춰지는, 앵글에 자신이 조카를 안는 그 씬이 담길 그 시간을 위해서.

기다려 달라는 말이 특별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다려 달라는 말은, 곧 뒤따라 갈테니 잠시 준비할 시간을 달라는 말과 같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하기 가장 좋은 말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대로의 내가 정말 나인지 싶은 회의감과 의심이 들 때 무작정 앞으로 가거나 혹은 후진하거나 혹은 옆으로 틀기보다 ‘기다려 줄래?’ 하고 스탠바이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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