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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snghwn Mar 27. 2018

물, 사랑, 그리고 당신의 형태

영화 <The shape of water>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는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하자면...”이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돼요. 그러곤 그 시간, 그 장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죠. 이것은 ‘사랑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면서요.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쉽게 다가 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왜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까요?

그건 아마도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형태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잃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화 속 그녀를 보면 사랑에 ‘형태’가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렵거든요. 종과 성별, 장애 모든 것을 넘어 오롯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 저게 사랑이구나’하고 느끼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셰이프 오브 워터>가 사랑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제껏 사랑이라 믿어온 형태가 갖추어진 사랑의 상실, 그리고 모든 차별 앞에 상실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의 형태’라는 제목은 얼핏 들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누군가가 “물은 어떻게 생겼나요?”하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는 생김새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사랑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형태를 규정해버리죠.

‘백인과 흑인이 무슨 사랑이야’

‘동성끼리 무슨 사랑이야’

‘장애인이 무슨 사랑이야’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엘라이자는 결국 소위 괴물과 사랑에 빠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쉽게 부인하지 못하죠.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엘라이자가 괴물과 나눈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분명 그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들과는 이질적이지만, 그들의 눈빛과 몸짓으로부터 그것이 사랑임을 알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주제는 영화 말미에 다시 등장한 내레이션에 의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당신의 형태를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이 내 온 주위에 있다는 건 알 수 있어요. 당신의 존재는 내 온 눈을 채워갑니다. 사랑으로 말이에요. 당신의 존재는 내 마음을 겸손케 해요. 온 세상 곳곳 어디에나 있어서.’


<셰이프 오브 워터>는 결국, 한 편의 판타지이자 동화이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입니다.

아이에게 소곤거리듯, 사랑에 대해 깨우치게끔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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