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y Srouji
아래에 글은 Apple의 임원진인 조니 스루지를 인터뷰한 번역 기사입니다.
A visit with Cupertino’s chief chipmaker, Johny Srouji.
By Brad Stone, Adam Satariano, and Gwen Ackerman | February 18, 2016
Photographs by Justin Kaneps for Bloomberg Businessweek
약 1년쯤 전, 애플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아이패드 프로 일정이 뒤처진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같이 들어갈 스타일러스 팬의 준비가 출하 일정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CEO 팀 쿡과 그의 수석 임원진은 가을까지 아이패드 프로의 소개를 미뤄야 했었고, 덕분에 애플 엔지니어 대부분은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임원인 조니 스루지(Johny Srouji)의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다.
스루지는 애플 하드웨어부 수석 부사장이다.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 워치, 애플 TV에 들어가는 실리콘 두뇌인 프로세서 칩을 만드는 부서를 운영한다. 원래의 계획은 애플의 태블릿용 칩인 A8X(아이패드 에어 2에 들어가는 칩과 동일하며 2014년에 소개)를 탑재한 아이패드 프로를 소개하자였다. 하지만 가을까지의 연기는 곧 아이패드 프로가 아이폰 6s와 같이 등장한다는 의미였으며, 아이폰 6s는 A9이라 불리는 더 빠르고 더 새로운 칩을 채용할 예정이었다.
기술 회사 임원들이 야근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문제다. 아이패드 프로는 중요했다. 아이패드 프로는 기업용 고객들에게 태블릿을 팔기 위한 시도였으며, 아이폰 6s 옆에 그대로 갖다 놓으면 약해 보일 터였다. 따라서 스루지는 엔지니어들을 반년 후에 나올 새로운 태블릿 프로세서 칩, A9X 출시로 투입했다. 엔지니어들은 시간 안에 임무를 마쳤고, 아이패드 프로는 더 빠른 칩과 12.9 인치 디스플레이, 560만 개의 픽셀을 탑재해 등장했다.
스루지는 보상도 달게 받았다. 12월, 그는 쿡의 경영팀에 신규 임원으로 들어갔으며, 4년 후 매매가 가능한 애플 주식 9만 주를 양도받았다.
그는 2008년 애플에 들어갔고 지금은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아마 세계에서 이윤이 제일 높은 기업 안에서 인지도가 낮지만 중요한 부서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2010년 이래 그의 팀은 오리지널 아이패드를 위한 A4 칩을 생산했었고, 애플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복잡한 과학의 세계인 실리콘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애플은 자사 제품의 차별화를 위해 특별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다. 애플이 디자인한 서킷으로 애플은 속도와 배터리 수명 간의 균형을 견고하게 맞추면서 소프트웨어 기능에 완벽하게 대칭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칩(기술적으로 System On Chip이라 불린다)의 컴포넌트 중에서도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와 스토리지 컨트롤러 덕분에 애플은 이른바, 아이폰 5s가 등장시킨 "연사"와 같은 사진 촬영과 저장 기능을 유용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따라서 애플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은 그동안 애플 칩 다수를 제조하는 삼성과 같은 업체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서도 신기능을 작업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올해로 51세의 이스라엘인인 스루지가 있다. 인텔과 IBM에서 근무 후 애플에 들어간 그는 다부지고 열정적이며, 아랍어와 히브리어, 불어를 할 줄 안다. 그의 영어에는 악센트가 옅게 들어가 있으며, 애플이 들어가는 주제가 나오면 선문답의 경계를 오가는 단어가 나온다. 그에게 끊임없이 얇아만 가는 아이폰 디자인에 대해 묻자 "어려움은 좋습니다. 쉬움은 시간 낭비고요."라고 답했다. "애플의 칩 설계자들은 예술가이자 엔지니어이면서 마술사입니다." 주제가 일반적일 때는 좀 더 자세한 답이 나왔다. "디자이너들이 이거 어렵다고 말하잖아요? 물리학 법칙의 위배만 아니라면 할 수 있는 거라고 봅니다. 어렵기는 해도요."
스루지는 최근 본지와 함께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그리고 이스라엘의 Herzliya에 있는 애플의 칩 설비를 둘러보면서 직접 안내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전략적인 안내이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애플 주식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여 애플 주가를 25% 이상 떨어뜨렸다.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자기 휴대폰에 대해 대부분 이미들 만족해하며, 그렇기 때문에 업그레이드에 구태여 수 백 달러돈을 더 들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3월에 애플은 업데이트된 아이패드와 더 작은 화면의 아이폰을 발표할 의도이며, 아이패드는 A9x, 아이폰은 A9 칩을 달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알린 소식통은 공개적인 코멘트를 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애플의 일반적인 대응은 섬세하고 멋진 조니아이브와 그의 팀이다. Wallabee 신발을 신은 산업 디자이너들이나 우아하게 만들어낸 알루미늄, 혹은 앱이나 신기능, 장비 등을 가리키게 마련이다. 보여줄 것이야 언제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애플 이윤 머신의 핵심 부분인 칩을 거론하지는 않았었다. 스루지의 말이다.
"너무나 좋아서 이 단계에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원컨대, 너무 많이 드러내고 싶지는 않군요."
In Israel, Srouji (second from left) and Cook (right) with Apple employees.
Source: Apple
2007년 오리지널 아이폰이 나왔을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의 결함을 잘 알고 있었다. 전면 카메라가 없었고 배터리 수명도 짧았으며, 느린 AT&T 2G 통신망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이 약했다. 오리지널 아이폰을 작업했던 한 전직 애플 엔지니어에 따르면 오리지널 아이폰의 기술이 혁명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DVD 플레이어에 쓰이던 삼성 칩부터 시작하여 여러 다른 업체들의 부품을 한데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제한이 심했다고 한다. 스루지는 잡스가 이런 결론을 냈다고 말한다.
"스티브는 정말 차별화를 이루고 정말 독특하면서 정말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실리콘 CPU도 결국 우리가 제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통제하고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죠."
잡스가 신뢰하는 자문가 중 한 명이자 당시 하드웨어 책임자였던 밥 맨스필드(Bob Mansfield)는 스루지를 고용하여 칩 제작을 맡겼다. 당시 IBM에 있었던 스루지는 신비로운 반도체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떠오르는 스타였다. 맨스필드는 그에게 완전히 처음부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약속했다.
그런데 반도체 디자인 결정은 위험이 있었다. 작은 우표만한 크기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어떠한 컴퓨팅 기기에서든 제일 중요한 부품이다. 게임과 페이스북 포스팅, 문자 보내기, 사진 찍기처럼 쉬워 보이는 작업을 맡기 때문이다. 작은 에너지 전극이 배터리로부터 수 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지나 나노세컨드 급으로 명령을 내리고 대답을 한다. 손가락 끝으로 복잡한 도시 디자인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칩이 효율적이지 않다면 그 기기는 느리게 느껴지고, 벽으로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소프트웨어에 버그가 있다면 수정된 버전을 출시하면 되지만 하드웨어는 다르다. "트랜지스터 하나라도 잘못되면 게임 오버입니다. 트랜지스터 하나하나 잘 작동해야 하죠. 실리콘은 매우 힘든 존재입니다." 보통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업체들은 프로세서를 인텔이나 퀄컴, 혹은 삼성과 같은 전문 기업들에게 맡긴다. 이들은 수 십억 달러를 들여서 칩을 올바르게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한다. (애플은 매킨토시용 프로세서를 공동 디자인한 바 있었지만 2005년 잡스는 현재 모든 맥에 들어가고 보다 강력한 인텔 칩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하여 칩 디자인을 포기했었다.)
스루지가 애플에 들어왔을 때, 애플에는 여러 업체로부터 구매한 아이폰용 칩을 통합하는 엔지니어 40여 명으로 구성된 팀이 있었다. 2008년 4월, 애플이 P.A. Semi라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을 인수하자 이 팀 인력은 150명으로 늘어났다. P.A. Semi는 전력 사용이 효율적인 반도체 디자인 전문 회사였다. 스루지의 팀은 신기능을 칩에 넣고 싶어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부터 휴대폰을 더 얇고 날렵하게 만들기 원하는 아이브의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른 부서와 협력했다. 스루지가 주관하는 회의에 참가한 적 있는 한 엔지니어는 수석 관리자들이 자신의 프리젠테이션을 열심히 준비해줬던 광경을 기억한다. 스루지의 지원이 신기능 결재 통과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스루지는 특히 계획대로 안 돌아갈 때의 선택사항과 같은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서 엔지니어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다른 형태의 부품을 사용한다면 주변의 간섭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식이였다.
“The only way for Apple to really differentiate and deliver something truly unique and truly great, you have to own your own silicon”
스루지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2010년, 아이패드와 아이폰 4가 나왔을 때였다. 모바일 기술을 라이선스 하는 영국 기업, ARM Holdings의 디자인을 수정한 A4 프로세서를 선보였을 때이다. A4는 아이폰의 새로운 고해상도,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지원하기 위한 디자인이었다. 스루지는 A4가 애플 최초의 SOC 생산이었다고 한다. "활주로를 막 만들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떴죠."
그로부터 수년 동안 애플은 칩 디자인을 개선하여 지문인식과 영상 통화, 시리 등을 지원할 칩을 소개했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기업들이 태블릿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들 대다수는 휴대폰용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스루지의 팀은 2012년 아이패드 3세대부터 특별한 칩(A5x와 A6x)을 디자인하여 아이패드에게 아이폰만큼의 고해상도 화면을 제공했다.
애플이 만들어낸 수수께끼의 반도체는 기술 업계의 이목을 끄는데 충분했다. 2013년 아이폰 5s가 나온 이후부터는 경쟁사들이 정말로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32비트 표준과 달리, 아이폰 5s의 A7 프로세서는 최초의 스마트폰용 64비트 칩이었다. 이 칩 덕분에 애플은 애플페이와 터치 ID 지문 인식처럼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넣을 수 있었다. 새로운 표준을 위해 개발자들은 애플리케이션을 재작성해야 했으나, 지도가 더 부드러워지고 비디오 게임이 더 멋져졌으며, 메모리를 많이 잡아먹지 않으면서도 앱의 반응성이 더 좋아졌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애플의 통제는 애플을 논란의 중심에 집어넣은 보안에도 매우 중요하다. 2월 16일, 법원은 애플이 FBI를 도와 San Bernardino 범인의 아이폰을 열어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애플은 이 명령에 싸우는 중이다. 애플의 모든 고객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선례를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최대 휴대폰 칩 제조사인 퀄컴은 32비트 칩 개발을 아예 없애고 따라잡기 위해 나섰다. 반도체 디자인에 대한 자세한 리뷰로 알려진 웹사이트, AnandTech 편집장인 라이언 스미스(Ryan Smith)는 휴대폰 기업들도 모두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말한다. "A7은 정말 업계를 들었다 놓았습니다."
스루지는 애플 64비트에 깜짝 놀란 경쟁사들의 반응을 기억하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면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다른 하나는 너무나 독특해서 다른 것들과 차별화시킬 수 있는 것을 생각해냈기 때문입니다."
Chip-durability testing at an unmarked Apple lab in Cupertino.
Photographer: Justin Kaneps for Bloomberg Businessweek
스루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그는 이스라엘 북부의 항구도시 하이파에서 태어났다. 그는 4형제 중 3번째로서 그의 가족은 크리스트교를 믿는 아랍인 가정이다(이스라엘에서는 소수 중의 소수이다). "하이파는 이스라엘에서 제일 통합된 도시입니다. 크리스트교도도 있고 무슬림도 있고 유대교인들도, 바하이교도들도 있죠. 원하는 종교를 가질 수 있고 평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통합이 제게는 잘 작동했죠."
스루지의 아버지는 하이파 외곽에서 금속 패턴을 만드는 사업체를 운영했고, 스루지는 10살 때부터 주말과 여름방학 때마다 엔진 부품과 의료장비, 기타 기계를 만드는데 쓰이는 목재 패턴 주물 제조를 도왔었다. 아버지의 철학은 유별났다. 아버지는 복잡한 작업물을 싸게 넘기는 반면, 보다 쉬운 작업물은 가격을 더 받았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매우 복잡한 일을 하고 싶어 하셨죠."
그는 2000년에 사망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족 사업이 불편해졌다. 교육이 훨씬 더 중요했다. 스루지는 고등학교 때 수학과 물리학, 화학, 과학에서 최우수였으며, 하이파 근교의 이스라엘공과대학(Technion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가르치는 강사가 그에게 컴퓨터를 소개했고 그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이스라엘 공과대학에 입학했고 연필로 코드를 작성하며 전산실에서 밤낮을 보냈고 결국 컴퓨터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받았다. 그의 석사 논문 주제는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시스템 테스트였다. 이스라엘에 있는 EMC Center of Excellence의 관리자이자 혁신부 부사장인 오나 베리(Orna Berry)는 당시 시대가 매우 진보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서 그루지를 만났었다. "그가 있는 곳이 놀랍지 않군요."
졸업 후 스루지는 하이파에 미국이 아닌 곳 중에서는 최대의 연구소를 차린 IBM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하이파는 이스라엘 공과대학이나 기타 이스라엘 대학교의 우수한 두뇌를 유치하기에 더 나은 곳이다. 그는 여러 지역의 컴퓨터를 연결시켜 무거운 연산을 완수하는 분산형 컴퓨팅을 연구했다. 올바른 네트워크 연결은 하드웨어 구축과 함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작성 기술을 요구했다. 그의 첫 번째 상사였던 오데드 콘(Oded Cohn)은 IBM 하이파 연구소 부사장이자, 연구실장이다.
"하루 만에 결과를 내오는데 완벽하단 말이에요. 그가 천재인지, 아니면 밤에 잠을 안 잤는지 종종 궁금히 여겼습니다. 둘 다일 때도 있었지만요."
유대인과 아랍인들 간의 갈등이야 항상 있었지만 스루지의 세상에서는 문제가 안 됐다. 여전히 스루지와 친구로 지내는 콘은 다른 성장 배경이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기술계는 기술계 사람들을 성격과 능력으로 대합니다. 다른 건 생각 안 해요. 일을 같이 하면 나머지는 사라지죠."
1993년 스루지는 IBM을 떠나 인텔로 가서 반도체 디자인 평가용 시뮬레이션 기술을 만들어낸다. 1999년 미국에 방문하는 동안 이스라엘 동료이자 관리자인 우리 바이저(Uri Weiser)의 로비로 오스틴에 있는 인텔 연구소에서 3년간 근무를 했다. 스루지도 유대인이라 여겼던 바이저는 텍사스주의 시나고그에서 열린 Israeli Memorial Day 기념식에 그를 초대했었다.
"저를 보더니, 자기는 아랍계 크리스트교인이라 말하더군요. 저는 일단 와서 환경을 좀 알아보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알겠다더군요." 그는 시나고그 안에 키파를 쓰고 앉아 모든 절차를 따랐다.
Standing in an aisle, surrounded by exposed circuit boards and digital innards, is like being inside the Matrix. “No one has seen this before,” Srouji says.
스루지는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로부터 수 마일 떨어진 곳에 산다.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를 운전하며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헬스도 다닌다. 그는 쉽게 웃으며 웃을 때는 기자의 어깨를 부드럽게 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칭찬도 잘 하지만, 회사 기밀로 간주될 수 있는 질문이 나오면 일단 자세히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그의 재량권이 높다는 점은 친구들도 알고 있다. 한 번은 전에 인텔에서의 동료, 바이저를 초대하여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칩 개발에 대해 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프리젠테이션 후, 비서가 바이저를 스루지의 빈 사무실로 인도했는데, 책상 위의 서류들이 모두 엎어져 있었다. 그 후 스루지가 방에 들어와 바이저에게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저의 말이다. "애플에 있으니까 여기 앉으실 수는 없습니다라 말하더군요. 비서와 함께 앉힌 후, 혹시 화장실 가고 싶으면 비서가 안내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2월의 어느 날 아침, 스루지는 실리콘 밸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자기 일에 대해 짧은 안내를 수행했다. 본사에서 셔틀버스로 10분 정도 지나자, 산타클라라 시 외곽 근처에 있는 업무용 빌딩에 도착했다.
직원 한 명이 버스의 스루지에게 인사하고 닫힌 문을 여러 개 지나 미래 칩 디자인을 테스트하는 방으로 안내했다. 에어컨 소리와 깜빡이는 붉은색과 초록색 점등 외에 빌딩은 너무나 조용했다. 방은 애플스럽게 하얗고 깔끔했지만, 잘 정돈되어 있지는 않았다. 두터운 전선과 거대한 플러그가 어지러이 놓여 있었으며, 사용 안 하는 오래된 맥이 서랍에 이미 읽은 책처럼 놓여 있었다.
모든 설비는 원격으로 돌아간다. 칩 설계에서 가능한 오류를 스캔하는 소프트웨어를 컴퓨터들이 돌리고 있었고, 칩의 한 부분에 대해 테스트가 며칠이고 계속되기도 한다. 그다음에 계속 작업을 반복하기 때문에 테스트만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스루지의 말이다."할 수 있는 한 실리콘을 최대한 혹사시킵니다. 운이 좋고 철저하게 조사했다면 출시 전에 오류를 발견하죠."
가까운 방에서는 서킷 보드가 미래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기능을 시뮬레이션하는 우유통-크기의 스택에 연결되어 있다. 전 세계의 애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이 원격으로 자기의 코드를 미래 칩 디자인에 맞춰 테스트할 수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몇 마일 더 가면 또 다른 표식 없는 빌딩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프로토타입 칩을 여러 가지 온도와 조건 하에서 테스트할 수 있도록 별도로 제작된 맥미니들이 놓여 있다. 서킷보드와 디지털 내부가 노출된 맥미니가 보도에 늘여져 있는 광경은 흡사 매트릭스 내부와 같았다. 스루지는 예전에 이곳을 본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다.
모두가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스루지는 비용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지만 애플의 연구개발 비용은 지난해 81억 달러 수준으로서 2014년의 60억 달러와 2013년의 45억 달러에 비해 크게 올랐으며, 증가 비용 대부분은 칩 개발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예산에 대해 스루지가 말한 것이라고는, 쿡이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는다는 점뿐이었다. "그래도 매우 타이트하게 운영합니다. 예산과 툴, 자원 제약이 있어야 엔지니어들이 최고를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산이 너무 많아지면 엉성해지죠. 잘못된 자세예요."
애플은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자기 손에 걸지 않았다. 여러모로 공급망의 죄수이기도 하고, 디스플레이는 삼성에서, 통신칩은 퀄컴에서 받는다. 삼성과 대만의 TSMC는 여전히 프로세서를 제조한다. 수요에 맞추는 생산능력을 부분적으로 이들 기업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애플은 20-나노미터 칩 디자인 공정에서 16-나노미터 포맷으로 이주한다거나 공간과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중앙 프로세서로 모뎀을 추가한다든가 하는 영역에서 삼성에게 뒤처져 있다.
특히나 160-나노미터 공정으로의 이주는 더 작은 공간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자문 회사인 Linley Group의 수석 모바일 칩 분석가인 마이크 데믈러(Mike Demler)의 말이다. "애플의 마케팅이 아니라 하드웨어 측면만 말하자면 삼성이 최고의 프로세서를 만든다고 할 겁니다."
아니면 애플이 혹시 이제 막 시작했다고 할 수 있잖을까? 지금은 Wi-Fi 모뎀을 공급받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스루지는 Wi-Fi 부분까지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애플이라면 테슬라의 각본으로부터 한 수 배워서 배터리도 스스로 개발에 나설 수 있다. 스루지는 배터리 부분 역시 너무 깊게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애플이 모바일 프로세서를 잘 만들고 있기 때문에, 애플이라면 맥 노트북과 데스크톱에 들어가는 인텔 칩보다 더 좋은 CPU 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스루지는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자기 팀의 임무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구 상의 모든 일을 다 하려 한다면, 스마트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With reporting Ian King
http://www.bloomberg.com/features/2016-johny-srouji-apple-chief-chipmaker/
번역 : 위민복
구성 : 케이머그
애플에 대한 모든 것. 케이머그
http://m.kmu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