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 무엇보다 ‘心不住相(심불주상)’의 방식으로
위 영상은 AI 입니다
“형상의 그림자는 심연처럼 흐른다”
어둠 속에 포개진 네 개의 화면.
눈, 입, 꽃 — 각각 분리된 감각의 파편이
TV 프레임이라는 관념 위에 겹겹이 쌓인다.
그 어떤 감정도 말하지 않지만,
침묵은 오히려 더 강하게 반사된다.
“여섯 가지 앎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눈은 보되 인식하지 않고,
입은 있으나 말하지 않으며,
꽃은 피었으되 향이 없다.
이는 지각의 분열이자
육근과 육경의 비조율 —
즉, 심식이 대상과 연결되지 못한 상태다.
보여지는 모든 것은 "知而不證(지이불증)",
알지만 도달하지 않는 허공의 장면이다.
“비어 있음 속에서만 드러나는 있음”
가장 하단의 모니터, 그 안의 하얀 연꽃.
눈과 입, 그리고 파편화된 지각의 경계 속에서
오직 연꽃만이 고요하게 있다.
이는 형상과 상관없이 드러나는 自性淸淨心(자성청정심)이며,
묘유(妙有) — 텅 비어 있으나 존재하는 진여의 꽃이다.
“마음의 주인은 형상을 깬다”
TV는 반복적으로 이미지를 비추지만
그 속엔 얼굴이 없다.
이 장면은 影像이 아니라 映心,
즉, ‘마음의 그림자’를 비추는 것이다.
그 모든 비추어짐 속에서
자아는 점점 해체되고,
남는 것은 無相의 침묵이다.
“창조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된다”
이 영상은 말하지 않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
형상으로 설명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감각에 도달한다.
이는 無功之坐, 성취하려 하지 않음에서 오는
근원의 창작 태도다.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
빛과 감각은 남는다.
이미지는 하나의 선문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