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된 후 난 후퇴 중이다

내게 남은숙제

5년 동안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에 다녔다. 말로만 듣던 꿈에서만 그리던 대기업 직원이 되다니...... 나는 그야말로 회사 건물에 압도당했고 이 거대한 건물 속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다는 걸 감사히 여겼다. 새벽 5시 반 알람이 울리면 난 로봇처럼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통근버스를 탔다. 내가 맡은 업무는 인사파트에서 해외 출장자들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출장자들의 항공권 예약, 발급 및 출장비를 지급하는 일을 했다. 난 내가 맡은 업무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3년이 넘어가니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과연 나는 이 일 말고 다른 일도 잘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똑같은 일만 하지?'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회사에서는 '이동 희망 부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난 그동안 눈여겨보던 다른 부서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업무를 써냈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국 내겐 부서이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같은 업무를 2년간 더 맡아야 했다.


결국 인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고 오랜 꿈이었던 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회사원에서 공무원이 된 일은 단지 직업이 달라진 것뿐 아니라 내 일상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이끌었다. 통장에 찍힌 월급은 회사 다닐 때보다 거의 반토막이 났고 덩달아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한 사무실에서 여러 명이 모여 근무하며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즐기던 환경에서 벗어나 교실에 있는 책상에서 혼자 근무했고 점심시간에는 급식지도를 해야 했으며 늘 내 옆에는 동료 대신 아이들이 있었다. 퇴근시간이 빨라져 저녁시간을 보다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고 방학때는 여행및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자동적으로 국민연금 대신 공무원연금에 가입됐고 공무원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누릴 것이 늘면서 그에 따른 의무도 생겼다. 교사는 국가공무원법을 따라야 하는 공무원으로서 다양한 의무를 지켜야 한다. 교육 및 연구 활동의 의무, 성실 및 복종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 비밀엄수의 의무, 정치활동 금지의 의무, 쟁의행위 금지, 영리 업무 및 겸업 금지 등. 그 결과 휴직 중에도 수시로 학교에 연락하여 현재 상황을 보고해야 했고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그 전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댔다.


문제는 변화를 꿰며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내가 공무원이 되면서 점점 후퇴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앞선 시대를 살고 있지만 왜 요구받는 행동은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내가 회사를 다니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회사의 모든 업무는 디지털로 전환되어 전자결재가 이루어졌고, 종이문서 사용을 자제했다. 하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신규 교사로 첫 발령을 받고 교무실에서 공무원증이 나왔으니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교사는 명함이 따로 없기에 공무원증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외부에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가끔 학교 밖에서 공무원 인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설레는 마음을 한 가득 안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나는 내 이름이 새겨진 공무원증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름과 학교명이 써진 손바닥 반 만한 노란 종이에 풀로 증명사진을 붙여 코팅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게 아닌가. 동네 도서관에서 발급해주는 도서증 보다도 허접해 보였다. 5년 전 회사에서 발급해준 사원증은 칩이 포함된 신용카드처럼 깔끔한 플라스틱으로 된 거라 자연스레 그 둘이 비교가 됐다. 공무원증은 사원증보다 약 10년 전에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결국 코팅된 종이도 세월의 흔적을 이기지 못하고 꾸깃꾸깃해진 공무원증은 지갑 구석에 자리 잡은 체 그 존재감을 잃어갔다. 회사 사원증과 같은 공무원증을 다시 손에 쥐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난 후였다.


이와 같은 경험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서 또 한 번 경험했다. 첫째 육아휴직을 마치고 둘째 출산휴가를 신청하기 위해 학교에 연락했더니 직접 학교로 와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난 만삭의 몸으로 학교로 향했다. 내가 한가운데에 있는 교무실 책상에 앉자 한 선생님께서 종이 두 장을 건네시면서 말씀하셨다.


“이건 복직서 양식이에요. 빈 A4 종이에 이걸 보고 그대로 따라 쓰세요. 여기 볼펜 있어요. 반드시 자필로 쓰셔야 해요.”

공식적인 문서로 활용될 서류를 자필로 작성하라니 내가 잘못 들었나라는 생각에 종이를 건넨 선생님께 되물었다.


“선생님, 이걸 자필로 쓰라고요? 왜 꼭 자필로 써야 하나요?”

“본인이 직접 복직서를 써서 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예요.”


난 이해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양식에 써져 있는 내용 그대로에 내 이름만 바꾸고 자필로 서류를 작성해 냈다. 마음속에는 '전재결재로 올리면 되는 일을 왜 굳이 수기로 작성하지?' 란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다시 스캔을 해서 전자 결재로 올려야 하니 두 번 일을 하는 셈이다.


전반적인 학교 시스템이 사회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회와 학생은 이미 첨단 기술에 익숙해져 저 멀리 달려가고 있지만 학교는 한 발짝 멀찌감치 떨어진 채 과거를 답습하고 있으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세계 최고로 인터넷 통신망이 잘 깔려있는 한국이지만 아직 학교에서만은 그 문턱이 높아 보인다. 2018년 학교에서 큰 화두 거리가 있었다. 학교에 와이파이를 설치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문제로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과의 갈등이 시작된 거다. 당시 학교는 나름 태블릿 PC, 3D 프린트 설치 등 첨단 과학 기술을 과학실로 들여와 과학 기술을 활용한 과학 수업을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과학실에만 설치한 와이파이를 교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교장선생님과 교실에 와이파이 설치를 반대하는 선생님과의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교장선생님은 시대에 발맞춰 와이파이를 설치해 아이들이 교실에서도 자유롭게 태블릿 PC를 활용한 수업을 원하셨다. 그전에는 고학년과 자료조사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반별로 짜여진 날에만 컴퓨터실 이용이 가능했고 이 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일부 학생들의 핸드폰 데이터를 써가며 조사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편을 겪고 나니 난 교장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했다. 학교의 낡은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했기에 와아파이 설치는 그 변화의 첫걸음이라 여겼다.


하지만 많은 선생님들은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교실이 와이파이존이 되다면 아이들이 교사 몰래 핸드폰으로 게임이나 유익하지 않은 동영상을 볼게 뻔하다며 지도에 어려움이 있다며 반대하셨다. 분명히 이럴 가능성도 충분했다. 이미 와아파이가 잘 터지는 장소를 소문으로 알고 있던 아이들은 방과 후 과학실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일명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다. 와이파이를 설치하면 이 광경을 교실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갔지만 와이파이를 설치하지 않아 겪는 불편함이 훨씬 커 보였다. 이미 아이들이 태어나기전부터 스마트폰은 존재했고 수시로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에게 이를 완전히 떼어놓고 교육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물론 이런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핸드폰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며, 너무 이른 나이보다 어느 정도 절제력을 갖추고 자료 조사능력 또한 있는 초등 고학년 이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교도 그사이 많이 변화한 건 틀림없어 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필수가 되면서 인터넷 통신망이 좋아졌을 것이고 이번에 복직 서류를 제출할 때도 모든 서류를 이메일로 전송해 처리했다. 하지만 그 변화 속도가 사회가 변하고 아이들이 변하는 속도에 발맞추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형식적으로 제출하는 서류가 많고 종이로 많은 업무를 처리하며 교실 수업 환경은 내 어린 시절과 비교해 인터넷이 가능한 TV가 놓인 것 빼고 별 차이가 없다.


사회, 회사보다 교육, 학교라는 시스템안의 시간은 좀 더디게 흘러가는건 틀림없어 보인다. 벌써 교사보다 한발짝 앞서있는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 난 어떻게 해야 시대에 발맞춰가는 교사가 될까?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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