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
교사에게 일 년에 두 번 긴장하는 날이 있다. 바로 학부모 상담기간이다. 보통 학교마다 1-2주에 걸쳐 학부모 상담을 진행하는데 수업을 마치고 바로 상담을 시작해 많게는 하루에 5-6건의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목도 쉬고 쉽게 지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학기 초에 진행되는 상담은 중요하기에 피할 수 없다. 교사와 학부모가 조심스러운 가운데 학생의 가정에서의 행동 특성, 성격, 생활 습관, 학생이 학교생활에 대해 느끼는 감정, 담임교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세부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날도 마지막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허리춤에 손바닥보다 큰 수첩을 끼고 치마 정장을 입은 한 학부모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라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나와 학부모는 바로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몇 시쯤에 퇴근해 방과 후에는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주말에는 아이들과 주로 무엇을 하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아이 생활뿐 아니라 학부모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날 만난 학부모는 자신이 인근 초등학교 교사라고 했다. 교실로 들어오실 때부터 왠지 나와 같은 직종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맞는 순간이다.
희한하게도 나는 같은 직종의 사람을 알아보는 신기한 촉이 있다. 보통 학부모님은 학교에 와서 아이의 담임교사를 처음 만나는 일을 조심스럽고 어렵게 여긴다. 특히 첫 만남에서 서로가 조심스럽기에 더욱 그런 행동들이 도드라진다. 그때는 나도 최대한 학부모님을 편하게 대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마치 내 홈그라운드에 온 듯 익숙함이 느껴졌고 걸음걸이에서도 자신감이 넘치셨다. 학교 사정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계셨고 나보다 나이도 많은 듯 보아 같은 학교에서 만났다면 필히 선배 교사로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교실에 들어선 순간 나는 교사고 그녀는 학부모일 뿐 다른 어떤 사사로운 선입견도 들어서는 안된다.
어머님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잠시 상담을 위해 들린 듯 마음이 바빠 보였다. 가방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수첩과 펜, 핸드폰만 손에 쥔 체 가볍게 발걸음을 한 모양이다. 학부모님은 어색함을 깨기도 전에 들고 온 수첩을 허리춤에서 빼내 책상 위에 올리더니 빼곡히 적힌 질문들을 하나씩 하셨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수학 선행학습을 전혀 하지 않아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학교에서 배우는 게 처음이에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수학 문제의 정답을 안 알려주시고 그냥 넘어간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럼 아이는 정답 확인을 어떻게 하나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정답을 꼭 다 알려주셨음 해요.”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몇 문제는 '한 번 풀어봐'라며 정답 확인을 건너뛰었을 수는 있다. 내가 수업 시간에 알려주지 않더라도 정답을 확인할 길은 많이 있으나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아 그런가요? 잘 알겠습니다.'라고만 하고 넘어갔다. 문제는 다음 질문에서 이어졌다.
“선생님 그리고 녹색 어머니 말인데요. 그거 모든 학부모가 서야 하는 건가요? 우리 학교는 안 그런데."
학교에는 '녹색 어머니회'라는 조직이 있다. 조직에 '어머니'라는 이름이 콕 박혀 있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요즘은 어머니뿐 아니라 가족 중 누구든 한 분이 오셔서 하루 30분씩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교통 봉사활동을 한다(학교마다 다를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 학교는 정문 바로 앞에 큰 차도가 있어 교통지도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꼭 어머님이 안 오셔도 되고 가족 중 한 분만 오시면 돼요.”
“선생님 이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요. 가족들이 전부 일하면 어떻게 하란 말씀이신가요?”
“다른 맞벌이 하는 가족분들도 한 분이 잠깐 시간 내서 오셔서 교통 지도해주시고 다시 직장으로 가세요.”
“이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 며칠 더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꼭 일하는 사람까지 아침에 불러서 이 일을 시켜야 하나요? 선생님이 학부모라도 그렇게 하시겠어요?"
녹색 어머니가 어떻게 조직되어 돌아가는지는 학교마다 다를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모든 학부모가 공평하게 하루씩 봉사활동에 참여해 아이들의 안전을 함께 책임진다. 그 학부모의 학교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머님은 본인 학교의 기준을 내세우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선생님 저는 그날 아침에 바빠서 올 수가 없고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예요. 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주세요.”
그 말을 남긴 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학부모가 교실을 떠난 후에도 그녀의 목소리가 교실 허공에 계속 울려 퍼졌다. 그때가 되어서야 그녀가 나를 아이의 담임교사가 아닌 자신보다 어리고 경력도 별로 없는, 모르는 것은 가르쳐줘야 하는 후배 교사로 대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학부모로서 충분히 의견을 제시할 순 있지만 그녀의 말속엔 '이 분야는 내가 더 잘 알아'라는 '오만함'으로 가득 찼고 담임교사에 대한 '예의'는 빠져있었다.
학부모 상담이 끝나고 동료 선생님과 상담 소감을 나누었다.
“전 교사인 학부모와의 상담이 가장 어렵더라고요.''
“맞아요. 원래 교사 학부모가 가장 무서워요. 학교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고 이미 자신만의 지도 방식과 학급 운영 방식이 있으니 그 틀 안에서 상대 교사를 보게 되거든요. 특히 자기보다 경력이 적은 교사를 만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이래라저래라 담임교사 방식에 간섭하고 그래요.”
그 외에도 미술 학원에서 교사로 일하는 한 학부모는 내 교실을 직접 예쁘고 꾸며주고 싶다고 제안했고, 역사 교사로 일하는 학부모는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며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 역사 프린트를 뽑아와 아이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물론 일언지하에 모두 거절했다.
그때 분명히 알았다.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달라야 함을. 학부모와 자녀, 교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자녀의 성장과정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다. 가끔 교사와 학부모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두 가지를 혼동해 그 선을 뛰어넘기 쉽다. 내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만 교사이지 내 자녀를 통해서 맺어진 관계에선 단지 학부모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한다.
학부모와 교사는 비록 어려운 관계지만 상대방에 대한 적절한 긴장감과 어려움 속에 예의와 존중이 얼버무려질 때 건강한 관계가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