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기사들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걸까? 인터넷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 때면 마치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처럼 감정 이입이 된다. 최근에 들은 가장 마음 아픈 소식은 10대 손자들에게 살해당한 할머니 기사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는 자신들을 키워주신 할머니를 무참히 살해하다니…… 하…, 참… 어째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 8월 30일 형제는 늦은 시각 집으로 귀가한 친할머니를 흉기로 살해했다. 장손자는 “성인이 되면 자립준비를 해야 한다”는 할머니 말에 앙심을 품고 동생과 할머니 살해를 공모했다.
형제는 7세, 5세 때 부모님 이혼을 겪은 후로 중증 불안 장애와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었고 할머니가 지극정성으로 키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형제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수시로 경찰서를 오갔다고 한다.
잘못 끼워진 단추의 원인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자식들을 버리고 간 부모 때문에? 할머니 마음도 모르고 철없이 자란 손자가 문제일까? 사실 그 원인을 한 가지로만 딱 꼬집어 말할 순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살해를 정당화할 순 없고 조손가정에서도 훌륭히 자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손자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식들이 버리고 간 손자를 거두는 할머니의 마음은 그동안 얼마나 애달팠을지, 아프신 할아버지까지 돌봐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버거우셨을지, 마지막은 또 왜 이리 비참해야 하는지, 할머니의 인생에 펼쳐졌을 살얼음판 같은 현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조부모에게 자란 아이들을 종종 만났다. 손자들을 키우는 할머니의 마음은 여느 엄마 못지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아비 어미 없이 자랐다’는 소리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손자들에게 더욱 지극정성이었다.
현식(가명) 이도 그중 한 명이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4년 만에 복직한 해, 5학년이었던 그 아이를 처음 만났다. 말 수 없고 웃음기 없는 얼굴, 낯선 사람에게 쏘아대는 날카로운 눈빛이 그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대부분 혼자 놀았다. 그 아이에겐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해 보였다.
어느 날 현식이가 내 눈에 띈 사건이 일어났다. 체육시간에 게임을 하는 도중 자기랑 의견 충돌을 보인 여학생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다. 여학생은 더럽다며 펄펄 뛰었고 현식이는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분노 가득한 눈빛을 나와 그 여학생에게 쏘아댔다. 여학생에게 ‘사과해’라는 내 말에도 그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난 잘못한 게 없어 사과할 수 없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가정환경 조사서에 적힌 현식이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식이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 같은 학교 2학년생인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그날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슨상님, 슨상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 가르치겠습니다.’란 말을 하며 전화기 너머로 연신 머리를 조아리셨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을 쏟아내며 우시기 시작했다.
“슨상님, 저도 사실 손자들을 보면 참 가여워요. 한참 부모 사랑받고 자랄 나이에 그러지 못해서. 그래서 더 신경 써서 키우고 있어요. 그런데 지도 이제 늙어서 힘드네요….”
“엄마, 아빠랑은 연락하고 지내나요?”
“지 아빠는 돈 벌로 저 먼데 가서 가끔씩 연락은 하는데 엄마랑은 연락이 안 돼요. 현식이 동생이 엄마 보고 싶어 핸드폰으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도 엄마가 전화를 피하고 안 받아요...... 애 엄마가 다른 남자랑 바람나서 이혼했어요. 결혼 생활도 말도 못 해요.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저에겐 미운 며느리지만 애들한테는 그래도 엄마잖아요. 그런데 엄마란 사람이 애들 전화를 피하고 안 받으니......”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겠어요.”
“애들이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겠어요. 내가 무슨 전생에 죄를 지어서 이리도 복도 없는지…… 엄마가 사랑을 안 주니 나라도 사랑을 많이 줘서 힘닿는 데까지 잘 키워야죠.”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들어줘서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목소리만으로도 할머니의 지난 세월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짐작이 갔다.
내가 현식이 할머니와의 통화에서 느낀 건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사랑이 결코 부모의 사랑보다 뒤지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할머니 역할에 부모 역할까지 더해주려는 오랜 삶에서 나온 연륜이 깊고도 진한 색의 사랑이었다.
손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할머니도 손자를 대한 마음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손자가 자신을 살해할 마음을 가진지도 모른 체 손자 교복을 정성껏 빨아 널으셨던 할머니. 이젠 그 교복은 다시 입을 일도 빨아 널을 일도 없어졌다.
어린 손자들에게 부모역할까지 하느라 애쓰시는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