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길이

짧지만 깊게

학교 알리미로부터 ‘깨톡’하고 문자가 왔다. <휴직 교원의 코로나 백신 접종 현황을 알려주세요>란 문자였다. 휴직 중이라도 일 년에 두 번은 학교에 연락해 현재 근황을 보고 해야 하기에 바로 교감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곧 한국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전하니 이메일로 관련 서류를 전해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전 9.1일 자로 다른 학교로 발령 났습니다. 다른 교감선생님 연락처 알려드릴게요.”


내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학교는 학생수가 1,500명이 넘고 교감선생님이 두 분이 계신 큰 학교다. 나와 문자를 주고받은 교감선생님은 3년 전 나와 이 학교로 같이 온 신규 교감선생님이시고 나머지 한 분은 이미 작년에 새로운 분으로 바뀌셨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교감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가신다니 서운함이 몰려왔다.


학교는 일 년 단위로 학교 구성원이 바뀌는데 하물며 내가 휴직한 2년 동안은 말할 것도 없어 보인다. 교사는 한 학교에 최대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이 4~5년이 되다 보니 그 사이에 다들 인근 학교나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신다. 학교 구성원이 바뀌면 왠지 익숙한 장소라도 낯선 곳처럼 느껴진다. 낯섦과 익숙함을 가르는 차이는 장소 자체보단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주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 같다.


첫 학교에서 신규 교사로 발령받은 동기들의 우애는 남다르다. 마치 ‘우리끼리 똘똘 뭉쳐 살아남자’라는 눈빛을 보내듯 보이지 않은 인연의 끈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겐 4명의 신규 교사 동기가 있었다. 모르는 거 서로 알려주고, 좋은 자료는 공유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번개로 밥도 같이 먹는 사이……. 그들이 없었다면 내 신규 생활은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서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시절은 2년으로 끝이 났다. 2년 후 나를 포함한 2명을 제외하고 3명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그것도 왕래하기 쉽지 않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던 터라 인연의 끈은 서서히 풀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간간히 문자로 안부를 물으며 이어왔던 끈도 지금은 완전히 끊어졌다.


유난히 합이 잘 맞는 학년 선생님을 만날 때가 있다. 비슷한 또래 교사들은 동지애 같은 감정을 느낀다면 경력과 인품이 넘치는 선배 교사를 만나면 어미 품에 안긴 새끼 새처럼 푸근함이 느껴진다. 8년 전에 만난 동학년 선생님들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로 끈끈한 정으로 뭉친 그런 학년이었다. 부장 선생님을 필두로 모인 우리는 총 6명.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에 모이면 연구실에는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맛있는 거 있으면 학교로 가지고 와 나눠먹고 간식타임도 종종 가졌다. 고민거리 있으면 털어놓고 같이 이야기하고 어떤 반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서로를 챙겼다.


그렇게 힘이 되어 주는 동료들이 있으면 아무리 몸이 지치고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다. 오직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에너지가 바로 이런 게 아닌 가 싶다. 혼자 하면 넘기 힘든 산 같던 고민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나누고 쪼개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린 마법 같은 힘 말이다. 그렇게 만난 기분 좋은 인연도 끝내 길게 이어가지는 못했다. 다음 해에 선생님들은 전라남도, 경기도 김포 등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고 나만 같은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맞을 준비를 했다.


회사와 달리 교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인연의 길이가 유난히 짧다는 것이다. 회사는 한 부서에 정착하면 동료들과 기본 5년 이상 인연을 이어간다. 그 속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볼 것 못 볼 것 다 본다. 그렇게 하면 이른바 ‘정’이란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른 부서에 가더라도 같은 건물 안에서 마주칠 수 있어 심리적 거리감도 그리 멀지 않다. 내가 퇴사한 지 14년이 넘었고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아직까지 회사 동료들과 인연을 이어가는 걸 보면 5년 동안 쌓인 정은 어마 무시할 정도로 대단했다.


반면 같은 동료로서 교사들의 인연은 고작 1~2년이다. 돌과 같이 뭉쳐있던 인연은 1~2년 후면 작은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진다. 다른 학교, 다른 지역으로, 또는 휴직으로. 정들라치면 떠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같은 학교가 아니라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선생님을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잦은 이동으로 인한 학교 생활 고충을 친한 엄마에게 털어놓으니 보험회사에 다니는 그 엄마가 말했다.


“우리 부서는 당최 사람이 바뀌질 않아요. 거의 10년째 그대로예요. 친한 사람도 있지만 보기 싫은 사람도 있잖아요. 이제 그만 마주치고 싶어요. 제발 우리도 조직을 자주 바꾸었으면 좋겠어요.”


그 엄마의 고충을 들으니 한편으로 이해가 갔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사람뿐 아니라 나랑 맞지 않은 사람도 만나게 되는 법이니. 짧은 인연은 안 좋은 감정도 세월 속에 희석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비록 동료 교사로서 만난 연연은 짧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이 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걸 보면 결코 우리의 인연은 얕지 않았나 보다.


보고 싶은 예전 동료 선생님들께 먼저 연락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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