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방심은 금물

코로나가 코앞으로

최근 베트남은 약 3개월간 이어진 락다운을 끝으로 식당뿐 아니라 그랩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3달간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하노이 사람들의 억눌림은 락다운이 풀리자마자 물밀듯이 터져 나왔다. 길거리엔 오토바이와 차가 넘쳐났고 식당엔 그동안 맛보지 못한 산해진미를 먹기 위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얼마 전에 있었던 베트남 여성의 날, 대형 쇼핑몰엔 점심시간 전부터 멋지게 차려입고 한아름 꽃을 든 베트남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마스크를 벗은 채 한 컷이라도 예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들어가려던 식당에선 ‘미안합니다. 이미 예약이 다 찼습니다’는 직원의 말이 들려왔다. 언제 하노이가 락다운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예전모습으로 회복하는 듯 보였다.


우리 가족 또한 그동안 발산하지 못했던 욕구를 분출하기 위해 또 얼마 안 남은 하노이 생활을 즐기기 위해 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들을 위해 그동안 못 먹었던 음식을 먹으러 가고 친구 집에 놀러도 가고 도서관에 책도 빌리러 다녔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핼로윈 데이에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하노이에서 특별한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 아이들이 기대하던 키즈카페를 방문했다.


투명 유리창으로 들여다본 키즈카페 안의 모습에 아들과 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평소대로 유치원을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렸다면 이 분위기가 익숙했겠지만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풍경이 낯선 듯 한동안 쳐다보기만 했다. 설렘, 즐거움, 신남, 낯섦과 어색함이 오묘하게 섞여있는 듯 동공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집에서 대부분 지내고 사람 마주치기를 피하고 다녔던 하노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며칠 사이로 180도 돌변한 모습에 우리 가족은 모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더욱 놀란 이유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이블 한 구석에는 꼬마 단체 손님들이 핼로윈 분장을 하고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어른들 역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기 바빴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식당 방문도 어렵고 그랩도 다니지 않았던, 수십 명이 코로나로 목숨을 잃던 심각했던 하노이 모습을 벌써 잊어 보였다. 통제는 풀렸지만 여전히 확진자는 수십 명씩 꾸준히 나오고 박닌 지역에선 백 명대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안일하게 행동하다가 다시 급속도로 상황이 나빠지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에게 더욱더 ‘마스크는 꼭 쓰고 있어야 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비루한 마스크 한 장뿐이기에 (마스크 하나에 내 건강이 걸린 현실이 슬프지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며칠 후 아이들과 나는 빌린 책을 반납하기 위해 또다시 집을 나섰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은 점점 거세졌다. 출국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궂은 날씨임에도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빌렸던 평소와 달리 가방에 아쉬움만을 덩그러니 담은 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은 하노이에서 책과 인연을 쌓을 수 있게 큰 역할을 했고 그곳에서 만난 작가들 덕분에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그곳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친한 동생과 점심 약속이 되어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동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후


“어머 머머…. 어떻게?” 하며 동생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아닌가.

“왜? 무슨 일이야?”

동생은 나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여줬다.


한인회 사무실에 확진자와 접촉한 F1 방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방문자의 테스트 결과 음성이 확인될 때까지 한인회 사무실 출입을 통제합니다.


한인회 사무실은 내가 좀 전에 방문했던 한인회 도서관 바로 그곳이었다. 그곳에서 책을 반납하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이런 문자를 받았으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건 바로 나였다. 아마도 우리가 나가고 난 후 관계자가 소식을 접했고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보였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은 채 그곳에서의 행동을 되돌려봤다. 마스크를 벗은 적은 없는지, 얼마나 머물렀는지, 다른 이들과 접촉은 없었는지. 다행히 아이들과 나는 마스크를 모두 착용했고 새로운 책을 고르지 않아 머문 시간도 그리 길지도 않았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잘 버티고 버텼는데 출국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이 생기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사회적 격리가 해제된 후 하노이에는 확진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 놀이터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노는 어린이를 자주 보곤 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 일까.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와 의료진이 호송해 가는 일이 발생했다. 호찌민에서 2주 전에 이사 온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이곳에는 확진자가 나오면 모든 신상을 공개하고 동의 아파트 출입구를 막는다) ‘한국에서는 더 많은 확진자가 나와도 일상생활 잘도 하는데 뭐 그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베트남에서 코로나가 더욱 두렵게 느껴지는 건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에 의해 차에 태워져 어딘지도 모르는 열악한 시설로 이송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켜져야 할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코로나 확진자가 만 명 이상이 나왔던 지난 3개월 동안 코로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내 주변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뉴스에서나 보도되는 그런 일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온 기분이다. 역시 하노이에선 출국하는 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되는 거였다. 출국하는 날까지 조심,조심해야겠다. 끝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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