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이사를 하면 생기는 일

짐 없이 생활하기

출국이 코 앞으로 다가오니 베트남에서 있었던 약 2년의 기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갔던 여행지, 수영장에서 맘껏 수영했던 일, 싸고 맛 좋은 베트남 음식을 현지에서 맘껏 맛본 일. 설렘을 동반한 긴장감으로 시작한 첫 해외 생활은 숙성의 기간을 거쳐 어느새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변해있었다. 길거리엔 차보단 오토바이가, 지하철 노선표보다 그랩 어플 속의 꼬마 자동차가 더 친근한 풍경이 되었다. 실감나지 않던 하노이 생활의 마침표가 해외이사를 앞두고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여행과 해외살이는 천지차이다. 여행은 최소한의 짐을 꾸리고 ‘부족 것은 현지에서 사고 버리자’란 생각이 강하지만 몇 년간 이어질지 모르는 해외살이는 그렇지 않다. 전혀 다른 곳에서 그야말로 직장을 다니고, 밥을 해 먹고, 학교 가는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여행가방만으로 나를 옮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여행은 다른 공간에서 이전의 나를 잠시 잊기 위한 시간이라면 해외살이는 새로운 공간에 이전의 나를 끌어와야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이사는 필수다.


올 때가 있으면 갈 때도 있는 법. 한국으로 돌아갈 때 또 한 번의 해외이사를 경험했다. 요즘은 국내 이사도 대부분 포장이사라지만 당사자는 이사 자체만으로도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더군다나 당일 도착이 안 되는 해외이사는 국내 이사보다 더욱 신경 쓸 부분이 많다.


한 달 전에 미리 견적을 받고 가장 저렴한 이사 업체로 예약했다. 이사 업체별로 가격 차이가 적게는 몇십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까지 차이가 났다. 같은 짐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니. 해외 이사를 하기 위해선 번거롭더라도 여러 회사에서 견적을 받는 것이 좋다. 이사 날짜가 정해지면 미리 집주인에게 알리고 경비실에서도 엘리베이터 사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보안이 잘 된 일부 하노이 아파트는 가구 하나를 옮길 때도 사전 허가 없이는 로비 밖으로 빼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전준비가 필수다.


해외 이사를 하기 위해서는 언제 짐을 보낼지 그 시기를 정해야 한다. 우리는 출국하기 일주일 전에 미리 짐을 보내기로 했다. 해상으로 짐을 보내면 짐을 받기까지 보통 3주에서 4주 정도가 걸리기에 그 기간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짐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다행히도 풀옵션으로 집을 계약해 집주인의 냉장고, 세탁기, 침대, tv 등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외의 짐은 없는 즉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한 달 살기'는 피할수 없다.


이사 전날 우리 가족은 짐 분류 작업을 시작했다. 직접 핸드 캐리 해서 가지고 갈 것, 이곳에서 두고 더 사용할 것, 해상으로 부칠 짐, 집주인 짐 등으로 나누었다. 이 작업을 미리 해놓지 않으면 이삿날 짐이 섞이면서 당장 필요한 물품도 해상으로 보내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여권과 입국 서류를 가방에 챙기고 귀중품, 한국 돈, 한국에 가서 입을 겨울 옷, 도착하면 바로 필요한 청소도구, 생활도구 등을 먼저 캐리어에 담았다.


이사는 아침 9시부터 시작됐다. 한국에서 이사를 하면 보통 3-4명의 직원이 오지만 베트남에서는 낮은 인건비 탓인지 한국인 직원 1명과 베트남 직원이 7명이나 왔다. 국내 이사와 해외이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모든 짐을 박스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장 시간도 국내 이사보다 배로 걸린다. 책장, 피아노, 화장대, 소파 등 큰 짐은 그 크기에 맞게 박스를 잘라 포장이 이루어졌다. 해외이사는 짐을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배로 이동한다. 컨테이너를 차지하는 부피에 따라 이사견적이 달라지기에 최대한 공간을 덜 차지하게 포장하는 게 중요했다.


한국인 관리자는 보낼 짐과 보내지 않을 짐을 미리 나에게 확인받고 베트남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분실에 대비해 어디에 있는 어떤 짐을 몇 번째 박스에 실었는지 사진을 찍어가며 체크했다. 베트남 직원들은 각자 정해놓은 업무가 있는 곳에서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오자마자 피아노 크기에 따라 박스를 잘라 여러 번 테이핑을 거쳐 포장을 하고 누군가는 부엌에 있는 그릇을 모조리 꺼내 하나씩 종이로 감싸며 꼼꼼하게 포장했다. 박스에 빈 공간이 생기면 완 중제로 메워 파손의 위험도 줄였다.


우리는 짐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오전 중에 이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우리 가족의 온기가 베어진 짐들은 망망대해를 거쳐 한 달 후에나 볼 수 있다. 짐이 빠져나가고 집주인 가구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집은 다른 집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과연 이곳이 내가 2년 동안 살았던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족의 향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개 남겨놓은 숟가락, 수건, 옷가지 등에서 겨우 희미한 온기를 찾을 수 있었다.


낯섦도 잠시, 이사 후 본격적으로 '최소한의 짐으로 생활하기'에 돌입했다. 평소에 세탁 후 바로 건조기에 넣어졌던 세탁물은 건조대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뜩이나 습도가 높은 하노이인데 최근 며칠 동안 계속 비까지 내려 빨래는 도무지 마를 줄을 몰랐다. 다음 날이 되어도 축축해 급기야 방바닥 가득히 빨래를 널어놓는 일이 벌어졌다. 어디 그뿐이랴. 오직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로 한 끼 먹을 분량을 준비했고 식탁 대신 아이들 공부용으로 사둔 책상 두 개를 붙여 식사를 해결했다. 반찬 몇 개만 올려놓아도 꽉 찬 상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 머리를 맞대었다. 반찬도 별로 없이 서로 엉덩이 붙여가며 먹은 식사는 왜 이리 맛나는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겠지.


해외이사는 나에게 최소한으로 사는 법을, 작은 상에서도 맛있음을 느끼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의 온기, 가족의 온기가 담긴 짐들이 무사히 내 품에 오기까지 그 최소한으로 느끼는 행복을 온 몸으로 느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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