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돈에 민감한 여자의 취미생활
나는 돈에 민감한 여자다.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얼마인지 따져보고, 이걸 취미로 하면 많은 돈이 드는지 아닌지는 나의 중요한 결정 요소다. 그 결과 여태껏 나는 직장생활 외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한 적도, 제대로 된 취미를 가져본 적도 없다. 돈이 없으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지 어릴 때 겪어봤기 때문이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처음 느낀 적은 중학교 때다. 질풍노도로 불리는 예민한 사춘기 시절, 우리 집은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 끝에 아슬하게 매달려있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신 아버지 사업은 그야말로 쫄딱 망했고 우리 가족의 생활터전은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에서 방 2칸짜리 반지하 집으로 옮겨졌다. 현실을 직시하자 뭐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믿음과 함께 나의 자신감도 지하로 곤두박이칠 쳤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돈 때문에 힘든 부모님께 나까지 힘들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모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소위 '착한 딸'이 되었고 그렇게 난 또래보다 어른스러워졌다. 엄마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내 기분도 슬펐고 오랜만에 웃는 날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문제집 값을 달라고 할 때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해 겨우 말하곤 했으며 학원을 더 다니고 싶었지만 '나 학원별로 도움이 안 되니 더 이상 안 다녀도 될 것 같아'라고 둘러대며 학원비라고 절약하고 싶었다.
어느 날,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보니 모르는 아저씨가 집에 와있었다. “여기에 도장 찍으시면 됩니다” 정체 모를 아저씨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몇 군데 도장을 찍고 도장 찍은 서류를 아저씨와 주고받았다. 곧이어 그 아저씨는 엄마에게 얼마의 돈을 건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사채업자였고 엄마는 그 돈을 몇 개월 동안 빌리셨던 거다. 경제에 관해서 잘 몰랐던 나는 뉴스에서 보도된 기사를 떠올렸다. 사채이자를 갚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기사였다. 어린 나는 ‘그럼 사채를 안 쓰면 되잖아. 저런 걸 왜 써?’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우리 집에 사채 빛이 생기고 나서야 집마다 어쩔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뉴스 속의 이야기가 우리 집에서 일어날까 봐 무서웠다. 실제로 생활비로 써진 사채 빛은 몇 개월 사이 원금을 제치고 무섭게 불어나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제야 사채 쓴 것을 후회하셨다.
난 이때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꼈다. 돈이 없으면 사람이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을 나락 끝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좋던 형제 우애도 돈 앞에서 무력한 것을 보고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자본주의 패배자로 전락했다. 그때 나의 의무는 우리 집 주위에는 쳐진 돈의 어두운 그림자를 빨리 걷어내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은 부모님께 드렸고 학비는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 충당했다. 나를 위해 쓰는 돈은 모두 사치라고 여겼다.
결혼하고 경제적 독립을 한 지금도 돈에 대한 나의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보다 조금은 여유 있어졌지만 나에게 투자하는 것은 아직 낯설다. ‘같이 골프 배우러 다닐래요?’라는 주변 엄마의 물음에 ‘골프 별로 관심 없어요’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나 같은 게 무슨 골프야’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골프를 치기 위해 골프 장비는 얼마가 들며 스크린 골프비나 필드 비가 먼저 머릿속으로 계산된다. 역시 고가의 취미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같이 어색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돈이 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글쓰기를 위해서도 필요한 재료는 있다. 컴퓨터와 종이와 펜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은 10년도 넘은 것으로 글 쓰는 데 아무 문제도 없다. 주기적인 업데이트도 필요 없고 한글 문서만 제대로 작동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좋은 컴퓨터가 글쓰기의 실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자주 글 쓸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종이와 펜은 문구점에서 누구나 살 수 있기에 부담도 없다. 돈이 없어서 못쓴다라는 말은 글쓰기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이렇게 돈에 민감한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취미다. ‘글쓰기’란 옷은 나를 화려하게 보이게 하지도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 티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하려 하면 부끄럽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글 조각이 얼마나 큰 빛을 발휘할지 나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쌓인 글 조각만큼 나도 함께 성장해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