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빠지지 않고 내주셨던 숙제가 탐구 생활하기, 미술작품 내기, 일기 쓰기였다. 탐구생활은 EBS 방송을 보며 어찌어찌해나갔고, 미술작품도 하루 날 잡아 방학 중 경험한 내용을 그리거나 우유팩이나 페트병을 모아 작품을 만들어 제출했다. 문제는 일기 쓰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는 쓰기를 무척 싫어했다.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머릿속으로 쓸 거리를 생각해야 하고 쓰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나에겐 그까짓 일기, 독서록 쓰기보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더 소중했다.
일기쓰기의 목적은 매일 자신이 한 일이나 생각을 기록하며 하루를 반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취지가 무색하게 나는 한 달치 분량을 몰아서 썼다. 방학 전에 ‘이번 방학에는 꼭 매일 마다 써야지’라고 결심하지만 이 결심은 일주일도 체 가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데 대체 뭘 쓰라는 거야’라며 투덜대며 숙제를 내주신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쓰려니 개학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고 결국 개학 하루 전에야 부랴부랴 완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 달치를 몰아 쓰려니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은 날씨였다. 오늘이 어떤 날씨냐에 따라 쓸 수 있는 글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눈이 많이 온 날에는 눈싸움한 이야기로 글을 쓸 수 있고 장마철에는 집에서 지냈던 일을 글로 쓰면 된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예전 날씨도 금방 알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기에 나중에는 신문을 보며 일주일 치 날씨를 미리 일기장에 표시해 두는 꼼수를 부렸다. 이마저도 기록하지 못한 날에는 ‘에라 모르겠다. 선생님이 날씨까지 체크하시겠어?’라며 내 맘대로 날씨를 표시하는 배짱을 부렸다.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보니 누가 나에게 숙제를 내준 적도 숙제를 안 해 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어느새 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돼버렸다. 가끔씩 엄마의 잔소리도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칭찬 도장이 그리울 때가 있다. 특히 어떤 일을 하려고 결심했을 때 누가 나에게 ‘이렇게 해보세요’, ‘이건 아니에요’, ‘이건 잘했어요’ 라며 해답을 알려주면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글쓰기를 싫어하던 내가 아무도 숙제를 내주지 않는 지금 매일 나에게 숙제를 내주기로 했다. 하루에 무조건 한 편의 글을 써보는 거다. 오전 내로 한 편의 글을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면 된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가장 먼저 하트를 누르며 내 글을 칭찬한다. 첫 번째 하트는 무조건 내가 누른다. 어떤 날은 그 하트가 유일한 하트일 때도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글도 엉망이건 잘 쓰건 상관없다. ‘오늘도 숙제를 무사히 잘 마쳤구나’에 대한 스스로의 칭찬이다. 글을 쓰는 주체도 나요, 글을 마감에 맞게 제출했는지 검사하는 사람도 나다. 내가 학생이면서 선생님인 것이다. 숙제는 하기 전에는 항상 마음에 담아놓은 짐작 같은 존재지만 다하고 나면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것처럼 홀가분하다. 정오까지를 마감 시간으로 정해놓았다고 해보자. 약 3시간을 투자해서 12시까지만 올려도 나머지 12시간은 홀가분하니 남는 장사 아닌가.
글쓰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사막을 건너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감이 안 온다. 누가 나에게 해답을 알려주면 좋으련만 글쓰기에는 해답도 없다. 유명한 글쓰기 강의를 들으면 글 쓰는 스킬은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글감, 주제 등은 내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내가 힘들다고 누가 대신 걸어줄 수 없듯이 글쓰기도 누가 대신 써줄 수 없는 외로운 싸움이다.
내가 안 썼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심지어 내 글을 기다려 주는 독자도 없다. 슬픈 현실이지만 마음의 부담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남들이 공감해주던 아니던 그냥 내 이야기를 쓴다. ‘계속 쓰다 보면 어제보다 나은 글이 나오겠지’, ‘이런 글들이 쌓이면 내 인생이 담긴 책 한 권 분량은 나오겠지’, ‘그런 것들이 쌓이면 내 자존감도 언젠가는 올라가겠지’라는 희망을 안고 말이다.
25년 전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던 서태지가 은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 내는 창작의 작업은 제게 살이 아리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음악 천재 서태지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나 보다. 하얀 백지상태였던 종이에 까만 글씨로 채우는 일도 서태지가 한 창작 활동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순간 내가 서태지처럼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 한 편의 글이 완성되면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오늘도 내가 해냈구나’라며 뿌듯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우리 집 보물들은 나를 자꾸 부른다. 나도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있어’, ‘지금 태블릿 피씨 보는 시간 아니야’를 연발하면서도 한 자 한 자 써간다. 비록 집중하지 못했지만 3시간이 훌쩍 지나갔지만 오늘도 숙제를 무사히 마쳐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