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니 쓰고싶어 졌다(1)

독서습관 길들이기

‘인생이 재미있는 이유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는 구절을 어느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다. 내 인생만 돌아봐도 이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나는 그야말로 책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부끄럽게도 일 년에 책 한 권을 읽을까 말까 한 사람이 나다. ‘이 세상에 놀게 얼마나 많은데 굳이 지루하고 따분한 책을 붙잡고 있어야 하나’라고 생각한 사람도 나다. ‘책 말고도 적은 시간 들여 유튜브에서도 지식을 얻을 수 있어’라고 생각한 사람도 나다. 한 기사를 보고 심각성 대신 깊은 안도감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기사 제목은 ‘책 더 안 읽는다… 성인 10명 중 4명, 1년 독서량 '0'


그 4명 중 한 명이 나였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동영상 콘텐츠에 밀려 독서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댔고 내 주변을 돌아봐도 책을 가지고 다니며 즐겨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을 들이자'라며 입만 나불대던 교사가 바로 나란 사람이었다.


책과 나의 부끄러운 인연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독서록을 숙제로 내주시면 다 읽지 않고 중간중간 책을 펼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독서록을 썼다. ‘썼다’라기보다 그냥 글자를 채웠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정도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 ‘참 재미있었다’를 덧붙이면 내 독서록은 완성이다. 지금 교사가 되어 독서록 검사를 해보니 책을 진짜로 읽고 썼는지 아니면 줄거리만 베껴 썼는지 눈에 훤하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 준다. 담임선생님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책 제대로 안 읽을래?’라고 윽박질렀다면 내가 책에 흥미를 붙였을까? 아마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책에 대한 정마다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 학생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기에.


고 3 시절 대학 입시를 앞두고 모의고사를 보면 항상 언어영역 점수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난 그 이유를 ‘문제집을 덜 풀어서’라고 결론짓고 열심히 문제집만 풀어댔다. 그래도 점수가 나오지 않자 ‘실천처럼 풀면 오를 거야’라는 희망을 안고 시간을 정해놓고 더 빨리 푸는 연습을 했다. 그럴수록 내용은 이해하지 못한 체 눈은 줄지어 서있는 글자를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언어영역 점수가 안 나와 교대 입학에 실패했다. 난 그 이유를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아서’라는 것을.


하노이에 오기로 결정한 날 ‘난 하노이에서 무얼 하지?’를 떠올렸다. 이곳은 친구도 가족도 아무도 없는 낯선 곳이다. 남편은 회사에 가고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고 그럼 난 무엇을 하고 지내야 하루를 알차게 보낼까? 엄마들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것도 나가서 운동을 하는 것도 내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니 돌아가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나만의 시간이 생겼는데 그냥 무의미하게 하루를 흘려 보낼 수 없었다. 그때 책장에 무심이 꽂혀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책을 안 좋아했던 나를 그나마 독서라는 세계가 조금은 재밌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그래, 책을 읽어야겠다!


하노이에 가서는 종이책을 제대로 구할 수 없기에 바로 E-book을 읽을 수 있는 사이트에 가입하고 E-book 리더기를 구입했다. E-book 사이트는 내게 신세계였다. 월정액을 내면 클릭 한 번 만으로 원하는 책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 내 독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일 년에 책 한 권을 읽을까 말까 한 사람이 한 달에 다섯 권 이상 읽었으니 종적의 발전이었다.


학창 시절 누가 읽으라고 해서 읽은 책과 성인이 되어 자발적인 독서를 위해 읽은 책은 그 시작점부터 다르다. 이미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내가 원하는 책’을 골라 읽으면 흥미와 몰입 부분에서 앞설 수밖에. 한번 독서에 몰입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하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아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바로 그 느낌 말이다. 독서는 내게 머릿속으로 다양한 상상을 하며 읽을 수 있어 그 어떤 드라마보다 재밌고 어떤 롤러코스터보다 짜릿한 그런 존재가 되었다.


다 읽고 나면 ‘다음 책은 무엇을 읽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백화점에서 여러 옷을 놓고 이리저리 비교하는 것처럼 책도 표지, 제목, 목차 등 이것저것 훑어본다. 이런 패턴이 정해지면 마치 톱니바퀴가 옆 바퀴에 물려 자동으로 굴러가듯 내 독서 습관도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는다.


읽은 책은 <책방 잉크>이라는 어플에 책 제목을 기록했다. 일 년 동안 읽을 독서량을 설정하면 내가 그 목표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 앞으로 얼마나 읽어야 하는지 그래프로 표시된다. 한 달 동안 읽은 책들이 달력에 기록돼 독서습관을 길들이고 점검하는 데 좋다. 2020년 1월에 설정한 한 해 동안 읽을 목표 권수는 100권, 2020년 한 해가 마무리될 때까지 나는 총 113권의 책을 읽었다. 이런 목표 설정이 없었다면 절대 이루지 못할 양이다.



2020년에 읽은 책 권수
KakaoTalk_20210405_090749654_01.jpg 2021년 3월에 읽은 책


책 읽는 루틴이 생겼지만 뭔가 아쉬웠다. 한두 달이 지나니 책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거다. 내가 그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었건만 인상 깊은 내용 하나 제대로 생각나지 않다니. 이는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의하면 당연한 거였지만 허무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럼, 쓰자!


예전의 나는 침대나 소파에 편히 몸을 기댄 체 책을 읽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메모를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책을 읽다 스스로 잠이 드는 건 예사였다. 이제 내 E-book리더기나 책 옆에는 항상 노트와 볼펜이 함께한다. 책 읽는 장소도 식탁이나 책상으로 바꿨다. 노트에는 책 제목을 쓰고 책 읽다 중간중간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정리했다. 나만의 느낌을 짤막하게 적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이 노트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가 아닌 단지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이다. 망각의 순간을 경험할 때 나를 구원해줄 한줄기 동아줄 같은 것. 그 노트에 나는 <생각이 자라는 노트>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 노트가 채워지면 내 생각도 함께 채워지겠지’라는 희망으로. 공책 앞에는 책 목록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목차를 붙이고 공책 아래쪽에는 쪽수를 표시해두었다. ‘이 책이 무슨 내용이었더라?’ 궁금하면 해당 쪽수를 찾아 넘기면 된다. 이 작업까지 마치면 꼭 책 한 권을 완성한 기분이 든다.

KakaoTalk_20201006_203712684.jpg <생각이 자라는 노트>
KakaoTalk_20201006_203712684_01.jpg 노트 앞에 표시된 목차



읽으니 쓰고 싶어 졌다(2)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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