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처음부터 완벽한 건 없다

문제는 2차 방정식에서 시작됐다. 수학의 성공 여부는 방정식이 결정한다고 했던가? 초등학교 수학은 공부하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으나 중학교 수학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X와 Y 값을 구하라는데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왜 구해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모르니 재미있을 리가 만무했다. 점점 수학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졌고 낙제점을 겨우 면하는 점수를 유지한 체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생이 되면 누구나 책상 위에 버젓이 올려놓는 책이 있다. 바로 수학계의 바이블로 통하는 ≪수학의 정석≫이다. 책의 두께에서 겁먹는 학생들도 첫 단원은 수월하다. ‘고등 수학 별거 아니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이런 걸 보면 교과서 만드는 사람도 '다 생각이 있구나'싶다. 첫 단원부터 미끄러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몇 개월이 지나면 ≪수학의 정석≫ 책만 봐도 수포자(수학포기자)의 윤곽이 드러난다. 앞장에만 까만 때가 묻으면 수포자, 골고루 때가 묻어있으면 수학 능력자로 들어설 가능성이 조금 커진다(완전히 들어선 건 아니다). 남들은 깨알 같은 글씨 때문에 있는 실력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이 책 덕분에 수학이 좋아진 정말 몇 안 되는 학생이 나였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멋스러워 보여서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꼭 대학에서 배우는 두꺼운 원서처럼 수준 높은 지식을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만 잘 정복하면 수학을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난 그렇게 이 책의 저자 홍성대 박사가 원하는 그런 학생이 되었다. 남들은 수포자의 길로 들어선다는 고등학교 때 나는 수학 능력자로 환골탈태했다.


내 비결은 이랬다. 처음 문제를 풀 때 기본 문제부터 푼다. 뒤에 있는 연습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는다. 연습 문제를 보면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도 매한가지였다. 그다음 기본문제가 완전히 이해가 됐으면 연습문제를 쓱 둘러본다. 풀 수 있을 것 같은 한 두 문제를 살짝 톡톡 건드려 본다. 아직 10문제 중 2문제 수준이기 때문에 ‘오~ 풀리네’ 라고 느낀다. 나머지 문제는 넘어간다. 다음에 또 본다. 이번 공략은 좀 더 힘주어 툭툭 건드려본다. 틀렸던 문제 중 그나마 만만한 한 두 녀석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라 답이 보기에 있다. 지우개로 틀린 답을 흔적 없이 지우고 처음부터 풀은 것처럼 고친다. 이 느낌이 참 신기하다.

며칠 후 이젠 진짜 전쟁이다. 별표를 잔뜩 쳐놨던 난이도 높은 문제에 도전한다. 이 녀석은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10분 동안 이 녀석과 씨름을 한다. 10분은 무조건 째려보고 노려본다. 이건 내 원칙이다. 무조건 10분은 싸우고 헤어지자는 애인 붙잡듯 ‘널 놓치지 않겠어’라는 심정으로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애인이 나한테 ‘알았어. 헤어지지 말자’라는 말을 할 때가 온다. 그럼 바로 ‘나도 사랑해’ 해주면 된다. 원래 싸움이 없었던 것처럼 안아준다. 그때 답을 쓱 고친다. ‘난 원래 처음부터 풀 수 있었어’라며 뿌듯함이 물 뿜어대 듯 폭발한다. 이런 환희까지 느끼면 그때부터 수학 능력자의 길로 들어 선거다. 다른 단원에 있는 문제를 풀 때도 방법은 똑같다. 다른 방법은 없다. 계속 풀고 고치고 틀리면 또 고쳤다.

고치는 일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린 지 한 달이 지났다. 사람들은 완성된 하나의 글을 보지만(사실은 이 글도 미완성) 이 글을 쓰기까지 수십 번 고치는 작업을 반복한다. 고치는 일이 ‘글쓰기 초보니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드는가? ≪노인과 바다≫ 를 쓴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는 “내 초고는 다 걸레다”라 했다. ≪대통령의 글쓰기≫ 로 유명한 강원국 작가는 “원래 좋은 글은 없다. 잘 고쳐 쓴 글만 있다. 좋은 글은 얼마나 잘 고치는지의 싸움이다”라고 했다. 결국 잘 쓴 글은 일반인, 작가 지망생, 초보 작가, 대작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고치는 작업을 계속해야 나올 수 있다.

내 글쓰기 과정을 보면 이렇다. 참고로 아직 나는 글쓰기를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된 초보다. 전문 작가와는 과정이 다를 수 있고 미숙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길 바란다. 우선 예전에 내가 겪은 경험을 마구잡이로 떠올려 노트에 적는다. 상황이나 들은 말, 내가 한 말, 겪은 일, 주워들은 말 등을 단어나 문장으로 간단히 적는다. 그때 들었던 감정도 함께 적어본다. 내가 쓰는 글이 주로 내 경험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글이기에 감정은 필수다. 이를 통해 이끌어 내고 싶은 주제를 선정한다. 이 주제를 토대로 더 붙이고 싶은 내용을 찾는다. 책에서 들은 말, 신문 기사, 유명인이 한 말, 유튜브 등에서 찾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쓸 차례다. 처음에는 워드 문서에 작성한다. A4 사이즈에 10포인트로 1장에서 1장 반을 목표로 한다. 첫 문장부터 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부분부터 쓰기 시작한다. 한 부분을 다 썼으면 다시 읽는다. 어색한 단어, 비문, 빼고 싶은 문장, 추가하고 싶은 문장이 생긴다. 그럼 신나게 고친다. 또 생각나는 부분을 쓴다. 그 부분도 읽어보고 오류가 있으면 고친다. 그럼 쓴 부분 전체를 다시 읽어본다. 어색한 부분이 있다. 또 고친다.


우여곡절 끝에 한 편의 글이 완성됐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본다. 아무래도 이상한 구석이 있다. 고친다. 이때는 수정할 부분을 발견했다는 기쁜 마음으로 고친다. 이 정도면 됐지 싶으면 복사해서 블로그와 브런치에 옮긴다. 발행을 누르기 전에 또 읽는다. 그럼 또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고친다. 이번에는 ‘발행 직전에 알아서 다행이다’란 마음으로 고친다. 드디어 발행 버튼을 누른다. 드디어 하나의 글이 완성됐다. 책 한 권을 완성한 것처럼 뿌듯함이 몰려온다.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니다. 핸드폰 화면에서 쓴 글을 다시 읽는다(글을 컴퓨터로 볼 때와 핸드폰으로 볼 때는 느낌이 다르다). 이때는 제3자가 쓴 책이라 생각하며 읽는다. 분명히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해서 발행했는데 고칠 점이 또 보인다. 또 고친다. ‘누가 읽기 전에 빨리 고치자’며 재촉하는 마음으로 고친다. 조금씩 지쳐가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고친다. 그리고 며칠 후에 또 읽어본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친다. 내가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린 글들과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어쩌면 몇 달 후에 새로운 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 고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시작을 안 한 사람만 있을 뿐. 이미 시작을 했다면 반은 성공이다. 고치고 고쳐서 더 나아질 일만 남았으니깐. 고치면서 완성되는 희열은 시작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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