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후면 잘 쓸 줄 알았다

글쓰기는 언제나 어렵다

지난 2월 4일 첫 글을 시작으로 글을 쓴 지 100일이 지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어제보단 잘 써지겠지’라는 심정으로 꾸준히 썼다. 끈기 약한 내가 어떤 일을 100일까지 끌고 왔다는 건 내 인생역사에 남을 일이다. 이 일이 적성에 맞아서 100일까지 이어온 걸까? 100일 동안 썼더니 글을 정말로 잘 쓰게 됐을까? 내 답은 '결코 아니다'이다.


남들은 말한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구나’, ‘적성에 맞으니깐 그렇게 꾸준히 쓰지’, ‘난 쓸 말이 없어서 못쓰겠어’, ‘어떻게 그렇게 길게 써요?’ 심지어 나도 착각했다.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호기롭게 시작한 글쓰기를 100일째 이어오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단 하나. ‘글쓰기는 참 어렵다’이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특히 잘 쓰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란 건 직접 써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유명한 작가들은 책 쓰는 작업을 할 때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작업실에 처박혀 글쓰기 작업만 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하물며 평가에 신경 안 쓰고 부담 없이 쓰는 나 같은 사람도 이 정도인데 대중들의 평가를 받고 이를 업으로 삼는 작가들의 글쓰기 고통은 오죽할까.


책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한 후 대단하다고 느낀 사람은 한 권의 책이라도 써 본 작가다. 꾸준히 책을 내는 작가들은 대단을 넘어 존경하는 수준이다. 꾸준한 집필을 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들은 나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한 권의 책을 써본 작가도 꾸준한 집필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첫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책 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거다. 뜨거운 물은 피부로 느끼기 전에 그 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른다. 처음에는 데기 십상이다. 나에게 책을 꾸준히 쓰는 작가들은 멋모르고 손을 뻗어 책 쓰기라는 뜨거운 물에 데었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고 다음 뜨거운 물을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글쓰기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생각을 통해 뇌를 활성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 생각은 내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생각,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생각하길 싫어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는 기존의 뇌와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일이다. 그 과정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나는 첫 문장을 쓰고 다음 문장을 어떻게 쓸지 생각이 안 나 한참 고민에 빠진다. 다음 내용을 매끄럽게 잇기 위해 쓴 내용을 반복적으로 읽고 수정하고 어떻게 글을 마무리할지 내 머릿속은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 누구는 첫 문장을 쓰면 다음 내용은 술술 잘만 써진다는데 나는 왜 이리 안 써지는지 자괴감에 빠진다. 그럴 때면 이 생각이 불쑥 튀어 오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하고 있나.

희한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날(난 이틀에 한 번씩 글을 올린다)이면 4시 30분에 눈이 떠진다. 내 알람 시간보다 30분 이른 시간이다. 글쓰기라는 소풍을 앞두고 기대감에 잠을 설치는 그런 설렘이 아니다. 글쓰기로 머리에 쥐가 날 생각에 걱정되는 잠 설침이다. 눈을 뜨면 ‘오늘 글 쓰는 날이네. 어떤 내용으로 쓰지?’, ‘어떤 내용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마무리 하지?’란 고민으로 아직 덜 깬 내 뇌를 자꾸 괴롭힌다. 다행히 주제가 생각나서 컴퓨터를 열면 온통 흰 화면이 나를 기다린다. 긴 막막함이 몰려오는 건 100일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내가 글쓰기를 가르친 우리 반 학생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도 글쓰기는 고난도이자 가장 기피하는 과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6학년 담임 시절 우리 반은 일기 대신 월요일 아침마다 <아침 주제별 글쓰기>를 했다. <내가 무인도에 떨어졌다면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것 3가지와 그 이유는?>, <만약 1억 원의 복권에 당첨됐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와 같은 주제에 자신의 생각을 10줄 이상 써서 제출해야 한다. 또한 국어 교과서에는 두 페이지 이상 되는 글을 써야 하는 일도 많다. 쓰기 시간이 되면 교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한탄이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김없이 이런 질문이 한다.

“선생님 이거 다 채워야 해요?”

“선생님 분량 좀 줄여주세요.”

그러면 나는 매정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당연하지. 분량 안채우면 다시 써야 하니 한 번에 잘 씁시다."


아이들에게 분량은 중요한 변수다. 분량을 정하지 않으면 6학년 학생이라도 2-3줄로 글을 마치고 싶어 한다.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일정 분량의 한 편의 글을 쓰기까지 아이들은 수많은 고민을 하고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수정할 줄 아는 학생들은 그나마 잘 쓰려는 의지가 있다. 몇몇은 지우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체 한 번 쥔 연필을 놓지 않고 생각의 흐름이 이끄는 대로 휘갈겨 써 내려간다. 그런 학생은 작가의 체질을 타고난 걸까? 수정이 안된 글은 거친 자갈길을 걷는 것만큼 투박하다.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이도 있는 반면 10분이 지나도 백지상태인 이들도 있다. 도저히 뭘 써야 할지 모르는 거다. 즉, 이런 학생은 자기만의 생각이 부족하다. 주변에 관심이 적고 어떤 현상에 대한 궁금증도 없다. 흘러가는 강물에 자신의 몸을 맡기듯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최소 분량만큼만 딱 채워서 제출한다. 마지못해 꾸역꾸역 채운 흔적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만큼 글쓰기는 고통스럽지만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는 최고다.


내가 직접 글을 써보고 나서야 학생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이들이 그랬듯이 흰 백지를 보면 망망대해를 혼자 헤엄치는 그런 막연함과 외로움을 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만날 아이들, 그러니깐 내게 글쓰기 과제를 받게 될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선생님도 해보니 글쓰기는 엄청 힘든 일이야. 그동안 안 쓰던 뇌까지 쥐어짜며 사용하는 기분이야.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원래 그게 그런 거더라고. 하지만 힘든 과정을 거친 만큼 너희들의 생각은 한층 성숙돼 있을 거야. 그 생각하는 힘이 앞으로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고 언젠가는 너희들의 자산이 될 수도 있어.
유명한 작가님도, 선생님도, 일반 어른들에게도 글쓰기는 어려워.
정말 어려운 일이야.


100일 후면 잘 쓸 줄 알았다.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글쓰기는 언제 써도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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