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사를 통해 그분에 대한 인상 깊은 일화를 읽었다. 이 일화는 며칠이 지나도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고 주시는 가르침을 귀담아듣고 싶었다. 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여행과 강연 등의 일정으로 많은 항공편을 이용했던 그는 그날(2020년 어느 날)도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항공사 매니저는 이상하다는 듯 계속 컴퓨터와 그분의 얼굴을 번갈어 쳐다봤다. 결국 주민등록증 사진과 대조해 보면서 직원이 물었다.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백한 살이에요.”
“컴퓨터에는 한 살로 되어 있습니다.”
직원은 배시시 웃었다. 항공사의 컴퓨터에서 세 자리 숫자가 인식이 안되었던 거다. 컴퓨터에서 한 살짜리가 비행기를 930번이나 탔다고 나오니 직원도 의아해할 만하다.
이 일화의 주인공은 바로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김형석 교수님이시다. 그분의 연세는 올해 102살. 100세가 넘도록 이렇게 활발히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이 또 계실까? 아마 지금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교수님을 보니 몇 년 전에 정년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재수 없으면 백 세까지 삽니다. 은퇴 후에 계획을 잘 세우셔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재수 없으면’이란 말이 붙은 이유는 아마도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경제력을 상실한 체 100세를 살아가는 노년기의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아무리 100세 시대, 100세 시대라고 해도 보통 100세 가까이 된 어르신들을 보면 병상에 누워계시거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하여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김형석 교수님을 보면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어쩌면 틀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100세가 되어서도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건강관리도 대단하지만 얼마 전에는 100세 이후 두 번째 책인 <백 년의 독서>까지 집필하셨다. 일생 동안 두 번째 책을 내신 게 아니라 100세 이후에만 두 번째 책이란 거다. 일생 동안 책 한 권도 쓰기 힘든데 100세 이후에만 두 권 째라니 얼마나 열심히 고뇌하고 연구하시는 삶을 사는지 알 수 있었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꺼려한다. 아집이 늘어나 유연한 사고가 힘들다. 색깔 나누기를 좋아하고 나와 뜻이 맞지 않으면 포용의 문을 열기보단 마음의 문을 아예 닫아버린다. 하지만 김형석 교수님은 다르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활기가 넘치신다. 편을 나누기 보단 포용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달한다. 한 세기를 살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는 얼마나 견고하고 깊이가 있을까? 교수님의 신문 기사 인터뷰, 쓰신 칼럼 등을 찾아 읽었다. 삶의 지혜로 여길 수많은 지혜 중 가장 인상 깊은 몇 가지를 추려보았다.
1. 인생의 황금기는 60대부터
“60대 초중반에 은퇴하면서 삶도 마무리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저는 반대입니다. 이때부터가 진짜로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나보다 남을 위해 살면서 보람찬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교수님은 “배움이 있는 삶, 일하는 삶, 취미가 있는 삶이 있어야 뒷방 신세로 밀려나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조언하셨다. 은퇴가 곧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다 보면 새로운 길이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2. 10년 정도 읽다 보면 인생이 달라져요
“학교 공부만 하고 책을 안 읽으면 자신만의 사상을 쌓지 못한다. 과장까지는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지만 부장 이상으로 승진해 결정을 내리는 직책을 맡으면 그땐 다르다. 회사의 방향을 올바르게 이끄는 리더가 되려면 자신만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독서다.”
공부만을 강조하고 독서를 게을리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말이다. 어디 청소년뿐인가.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4명은 일 년 동안 아예 책을 읽지 않으며 책을 읽는다는 성인도 1년 독서량은 고작 6권 수준이다. 독서량 수준만 보면 한국은 세계 후진국이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한계를 경험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독서문화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셨다. 하버드 학생들은 한 강의를 들을 때마다 1000페이지가 넘은 ‘벽돌 책’을 최소 3권씩 읽는다니. 미국이 세계 제1의 최강 국가이고 구글, 아마존, 페이스 북과 같은 일류 기업들이 많은 나오는 데는 독서가 그 일등공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3. 부모는 아이의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그 사람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자유는 곧 선택입니다. 아이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이걸 해! 저걸 해!’가 아니라 ‘이런 게 있고, 또 저런 게 있어. 너는 어떤 걸 할래?’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합니다.”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주면 아이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삶을 헤쳐갈 마음의 근육이 생긴다고 하셨다. 부모는 아이가 넘어지고 험난한 길을 가면 마음이 아프다. 항상 옆에서 보호해 주고 안전한 길로 가라고만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아이의 인생을 옆에서 챙겨줄 수 없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도록 부모는 아름다운 방목을 할 필요가 있다.
4.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공부하세요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옵니다.”
노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덜 받아 건강할 것 같은데 교수님의 말씀은 정반대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하다고 한다. 특히 친구들 중에 가장 건강한 사람은 일이나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배움이 있는 삶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진다는 이 말씀은 앞으로 내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나는 김형석 교수님이라는 큰 어른을 만났다. 그래서 든든하다. 비록 핸드폰이라는 작은 화면을 통해서지만 한 세기를 살아온 분이 전해주는 묵직한 지혜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분으로 부터 얻은 지혜는 내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정표같은 역할을 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