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에 대한 오해

뜨개를 사랑하기로 했다

누군가 나에게 ‘잘하는 게 뭐예요?’ 또는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선뜻 생각나질 않는다. 그동안 제대로 된 취미도 재능도 모른 체 살아왔고 직장생활과 육아 말고 다른 어떤 것에 눈을 돌리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며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살아왔다. 그 결과 어느 순간부터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고 나는 삶의 여유를 모른 체 바싹바싹 말라가는 메마른 한 인간으로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우연히 뜨개를 만났다. 이는 순전히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생긴 불이익이 수 십 가지라면 이익이 되었던 단 한 가지는 바로 뜨개를 알게 된 점이다. 코로나가 심해지고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면서 언제부터 마스크 스트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스크 스트랩은 현지 베트남인들보다 한국인, 일본인들 사이에서 서서히 퍼져 나갔고 이는 어느새 패션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단연 하노이에서 마스크 스트랩을 착용하는 사람은 거의 한국인과 일본인들이다. 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스트랩들이 쏟아져 나왔다. 반짝이가 들어있는 스트랩, 구슬로 직접 꿰어 만들 수 있는 스트랩, 클립 형식으로 끼워서 연결하는 스트랩 등. 그리고 일명 금손을 가지고 있는 아이 엄마들은 스트랩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언니 마스크 스트랩 있어요? 만들어 줄까요?”

“그걸 어떻게 만들어?”

“이거 만드는 거 쉬워요. 털실로 하면 금방 만들어요.”

친한 동생은 어느새 빨강, 핑크, 하늘색 등의 털 뭉치와 코바늘을 가지고 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앉은자리에서 스트랩 3개를 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털 뭉치와 코바늘을 만난 건, 그리고 누군가가 뜨개 하는 행위를 직접 본 건 참 오랜만이다. 20대 초반 뭐라도 배워보겠다고 문구점에 있는 털 뭉치와 도안을 사서 뜬 기억이 있지만 내 길이 아니란 생각에 슬며시 바늘을 내려놓고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20년 만에 털 뭉치와 코바늘이 다시 내 시야로 들어온 거다. 온통 회색, 검은색, 흰색 등 무채색 위주의 나에게 빨강, 핑크, 하늘색 등 알록달록 색깔로 나를 물들이는 상상을 해봤다.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밝음과 여유, 기분 좋은 감정 등이 느껴졌다. 폭신폭신한 털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메마른 가슴을 푹신푹신하고 말랑하게 만들었다. 안 되겠다! 나도 다시 시작해 봐야지.


집으로 달려가 유튜브 검색어에 ‘코바늘 만들기’를 쳐봤다. 그랬더니 내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알록달록 다양한 털실 색깔에 한번 놀라고 코바늘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이렇게나 많다는 거에 두 번 놀랐다. 마스크 스트랩뿐 아니라 가방, 인형, 옷, 바구니, 수세미, 머리핀, 머리끈, 파우치, 테이블 매트, 목도리, 스카프, 모자, 열쇠고리, 가랜더, 티코스터, 신발, 팔찌 등등. 오히려 못 만드는 것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로 털실과 바늘만 있으면 다양한 것들을 만들 수 있었다. 바늘과 실을 구입해 기초 뜨개 법부터 다시 배워나갔다. 매듭짓기부터 사슬 뜨기, 짧은 뜨기, 긴뜨기, 한길긴뜨기, 두길긴뜨기, 구슬뜨기 등. 내가 할 수 있는 뜨개 법이 하나씩 늘어갔고 노력에 대한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니 재미까지 더해졌다. 그 결과 지금은 뛰어난 실력은 아니지만 가방, 티코스터, 머리핀, 인형, 물병 케이스 등은 스스로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뜨개의 세계로 막 입문한 내가 어느 순간 뜨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뜨개를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뜨개에 관심이 없던 일 년 전 나의 모습과도 같았다. 우선 사람들은 보통 ‘뜨개질을 한다’라고 하지 ‘뜨개를 한다’라고 하지 않는다. 서라미 작가가 쓴 『아무튼 뜨개』를 보면 그에 관한 글이 나온다.


일상생활에서 ‘~질’을 붙이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부정적인 뉘앙스가 따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중략)… 보통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같이 낚시질하러 갈래?’라고 하지 않고 ‘낚시하러 갈래?’라고 한다. 낚시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행위에 더는 질을 붙이지 않는다.


뜨개인들도 더 이상 굳이 ‘~질’ 자를 붙여 뜨개를 폄하하고 궁상맞은 느낌을 들지 않도록 ‘너 뜨개질 해?’가 아닌 ‘너 뜨개 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몇 달 전 인터넷을 통해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시간을 지내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나와 같이 뜨개 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기사를 봤다. 뜨개 관련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뜨개 관련 재료도 코로나 전보다 더 잘 팔린다고 한다(현재 우리나라 뜨개 인구는 약 100만 명으로 추정한다). 꼭 내 얘기를 기사로 옮긴 것 같아 공감하는 마음에 기사를 읽고 밑에 달린 댓글도 읽기 시작했다. 일명 베스트 댓글이라고 상위에 위치한 댓글들은 의외로 이러했다. ‘털실 값이 너무 비싸다’, ‘털실 값이나 사는 값이나 똑같다’, ‘다 파는데 그냥 사고 말지 저걸 왜 궁상맞게 만들고 있냐’ 등 부정적인 글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다.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에 여유가 없고 내가 직접 만들어서 생기는 가치에 대해 몰랐던 나를 보는 것 같아 부끄러움도 밀려왔다. 비록 털실과 바늘, 그리고 부재료까지 하면 재료 값이 더 들 수도 있고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단순히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여느 제품과 내가 만든 작품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결과로는 단지 하나의 작품에 불과하지만 그 과정 속에는 실과 바늘을 고르는 고뇌와 손에 잡힌 물집과 땀방울이 의미하는 집념과 실을 풀고 다시 시작하는 재도전의 과정이 담겨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헛된 시간이 아닌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편안한 마음으로 손의 속도에 나를 맡기는 느림의 미학을, 빨리 가고 싶어도 꾀를 부려서는 절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인내심을,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으로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유니크함과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해 주는 뜨개를 나는 계속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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