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이 뭐길래

진짜 공부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그동안 다양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났다. 그들은 어느새 내가 회사에서 겪은 기억보다 더 많은 기억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 해에만 30명의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학부모까지 합하면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내 제자 중 일부는 이미 성인이 되어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도 있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아이들은 아직 중고등학생 신분으로 학업에 매진하며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다. 몇 년이 흘러도 그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현재의 안위가 궁금한 건 어쩌면 교사라면 당연히 드는 궁금증일 것이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 중에서도 유독 내 기억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그런 아이와 학부모가 몇몇이 있다. 1학년 담임 시절 만났던 그분도 그 몇몇 중 한 분이다.


2014년 내가 맡은 반에는 한국인 아빠와 일본인 엄마를 둔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다문화 가정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읽기, 쓰기 등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야무지고 자기 일을 스스로 해내는 예의 또한 바른 아이였다. 이렇게 바르게 자라온 아이를 보면 내심 그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할 때가 있다. 그분 역시 만나고 싶은 부모중 한 분이었다. 어떻게 해서 바른 아이로 예쁘게 키우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학부모 상담 기간만을 기다렸다. 또한 처음 마주하는 일본인 엄마였기에 일본인들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어떤 교육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드디어 1학기 초에 진행되는 학부모 상담기간에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났다. 그녀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고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새벽 6시 타임에 어학원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상담을 진행한 후 한국과 일본 교육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고 이해 안 되는 점이 있어요.”

“그게 뭔가요?”

“저는 학부모 총회 하는 날 가보고 너무 놀랐어요.”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매년 학부모 총회가 열린다. 전교생 학부모님들을 모셔놓고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전반적인 학교 소개와 각 반의 담임, 전담 선생님을 소개하는 연례행사다. 그날 학부모들은 같은 반이 된 다른 엄마들과 안면을 틀 겸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많이 참여하신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학부모 총회에 갔더니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의자는 많이 비어있고 오신 대부분의 엄마들도 교장, 교감 선생님 말을 듣기보다는 각자 핸드폰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웅성대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만히 들어보니 거의 아이들 학원 이야기예요. '어디 학원이 좋다더라, 어디 학원은 별로더라' 하면서요. 전 그걸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일본에서는 이런 학부모 총회가 열린다고 하면 시작 전에 미리 와서 의자에 다 앉고 핸드폰을 끄고 조용한 가운데에서 선생님 말씀을 경청해요. 그리고 제가 의아한 건 한국 엄마들은 학교보다는 학원을 더 신뢰하는 것 같아요. 어디 학원에 보낼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일본도 학원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한국처럼 많이 다니지는 않아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 교육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그전부터 보아왔던 학부모 총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기에 그런 행동들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학부모와 아이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학원 이야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들은 이미 일상이 되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일이 일본인 엄마 눈에는 이상하게 비쳤던 것이다. 다른 건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원’ 문제에서 만큼은 교사로서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내가 아직까지 일본인 엄마와의 대화가 생각나고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학교보다 학원을 점점 중시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 때문이다. 이제는 학원을 다니지 않은 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미취학 아동기부터 아이들은 ‘학습’이라는 이유로 이리저리 학원에 떠밀리고 있다. 아이들에겐 학교에서 내주는 글쓰기 숙제보다 영어학원에서 내주는 단어 암기가 더 중요하고 자료 조사 해오라는 담임 선생님 말보다 수학 문제집 몇 쪽까지 풀어오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이 더 중요해졌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곳이고 공부를 하려면 학원을 잘 골라야 한다는 말이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진 않는다. 학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아이들의 외침을 결코 가볍게 넘길수 없는 이유다.


하노이에 와서 놀란 점 중 하나는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는 항상 한국어로 된 학원 간판들이 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법. 예체능계 학원은 물론이고 국, 영, 수 학원도 즐비한다. 학생들은 4-5시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 차에 몸을 실은 체 또 다른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바삐 학원으로 떠밀린다. 마치 공부만을 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처럼.


내가 학원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남들이 다 가는 곳이니, 그 학원이 좋다고 하니, 우리 애만 안 가면 혼자 뒤처지는 건 아닌지 걱정에 앞서 학원을 보내는 건 아닌지 학부모들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학부모 상담을 해보면 아이들을 학원에만 보내면 성적이 다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학교든 학원이든 수업을 듣고 자기만의 생각으로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효과는 미비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도 학원에 가기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걸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하니 어쩔수 없이 따라 하는 공부가 아닌 스스로 생각해서, 나의 필요에 의해서, 남들과 비교당하지 않는 공부가 진짜 공부로 인정받는 시대가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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